▲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인간과 신 사이에 다다를 수 없는 거리는 누가 만든 것일까. 어쩌면 인간의 편견이, 오만이, 생존을 넘어서 있는 탐욕이, 스스로를 옥죄는 권력에의 의지가 신의 길과 인간의 길 사이를 단절시키고 일그러뜨리고 쏠아낸 것은 아닌지. 원래 신의 길과 인간의 길은 다른 길이 아닐 것이다.
독일의 영성가 안셀름 그륀은 신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도 둘이 아니라고 하고 있다. 그는 아가(雅歌)서의 예를 들고 있다. 아가서는 솔로몬의 사랑의 경전이다. 거기서 솔로몬을 향해 당신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달콤하다며 은밀하고 힘찬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여인은 대제사장의 딸이라 알려진 슐라미다. 슐라미가 노래한다. “정녕 당신은 아름다워요, 나의 연인이여. 당신은 사랑스러워요, 우리의 잠자리도 푸르답니다. 젊은이들 사이에 있는 나의 연인은 숲속의 사과나무 같답니다. 당신의 그늘에 앉는 것이 나의 간절한 소망. 당신의 열매는 내 입에 달콤합니다.”
사랑에 빠진 솔로몬은 예루살렘을 향해 사랑의 비가(秘歌)를 부른다. “예루살렘 아가씨들이여, 노루나 들사슴을 걸고 그대들에게 애원하니 우리 사랑을 방해하지도 깨우지도 말아주오, 그 사랑이 원할 때까지.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여, 당신의 모습을 보게 해주오, 당신의 목소리를 듣게 해주오. 당신의 두 눈은 비둘기라오, 당신의 볼은 석류 조각 같다오. 당신의 젖가슴은 나리꽃 사이에서 풀을 뜯는 한 쌍의 젊은 사슴 같다오.”
기독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는 아가서를 읽어내지 못한다. 너무도 불경스러워서 저리도 에로틱한 작품이 경전이 되고 마침내 성서 속에 들어간 이유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사랑에 빠진 연인의 노래 아가서는 분명히 성서 속의 성서다.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 그대의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뜨겁고 소중한 사랑의 노래 솔로몬의 ‘아가’를 따라가다 보면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뭉클하게 뭔가가 올라와 자연스럽게 고백하게 된다. 에로틱한 사랑의 근원이 아가페로구나, 아가페와 에로스가 둘이 아니구나.
아가는 에로스를 죄악시한 신약시대의 전통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에로스는 죄가 아니다. 사실 에로스가 죄인 사람에겐 아가페 또한 경직되어 있다. 오히려 우리는 에로스의 신비를 통해 아가페의 신비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서로 사랑하는 일, 온전히 사랑하는 일, 그 속에 신이 있으니까.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노래했다.
“오, 사랑이여, 너만이 신을 하늘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릴 수 있었다. 오, 너의 속박은 얼마나 강한가. 신을 묶어놓을 수 있을 만큼 강했으니. 너는 신을 인도해왔고, 너의 화살로 상처를 입혔다. 너는 영원한 자를 죽을 수밖에 없는 자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