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거일 소설가 | ||
지난주 ‘6자 회담’의 당사국들은 북한 핵 물질의 검증을 위한 청사진에 합의했다. 협상에서 진전이 있었다는 겉모습과는 달리 그 합의는 ‘6자 회담’이 북한 핵무기 문제를 푸는 데 실질적으로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이제 북한은 바라던 것들을 다 얻었다. 원래 북한은 자신과 미국 사이의 양자 협상을 요구했었는데, 그동안 ‘6자 회담’은 실질적으로 양자 협상으로 바뀌었다. 자연히 북한은 미국과 대등한 지위를 얻었고 정권의 정통성도 인정받았다. 지난해엔 마카오의 은행에 동결되었던 불법 자금도 미국의 특별한 배려로 되찾았고, 이번 합의로 다량의 연료용 석유를 받게 되었다. 게다가 북한은 미국의 ‘적성국 거래법’에서 풀리고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도 빠지게 되었다.
반면에 북한은 낡은 영변 핵발전소의 냉각탑을 폭파하고 그동안 추출한 플루토늄에 관해 신고했을 따름이다. 북한은 보유한 핵무기,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그리고 시리아의 비밀 핵 시설과의 관련과 같은 중대한 문제들에 대해서 보고하지 않고 넘어갔다.
이처럼 ‘6자 회담’의 성과가 초라한 까닭은 일차적으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조급한 외교다. 북한 핵무기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장담했던 터라 그는 임기가 끝나기 전에 외교적 성과를 내놓아야 할 처지다.
그러나 근본적 까닭은 미국의 영향력의 쇠퇴다. 원래 미국이 북한과의 직접 교섭을 마다하고 ‘6자 회담’을 고집한 것은 북한 정권을 떠받쳐온 중국에게 북한 핵무기 문제를 해결하라고 압력을 넣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중국의 힘이 빠르게 늘어나고 미국의 권위와 군사적 여력이 크게 줄어들면서 그런 전략은 비현실적이 되었다.
마침내 미국은 북한에 핵무기를 철폐하라고 압박할 길이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아시아 지역 요원이었던 아트 브라운의 평가는 주목할 만하다. “북한은 자신의 핵무기들을 포기할 의향을 보인 적이 없고, 불행하게도 우리는 북한이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거나 유도할 위치에 있지 못하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북한이 핵무기를 계속 보유하도록 허용될 가능성은 아주 높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확산시키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북한에 핵 보유국 지위를 허여할 준비가 된 듯하다.
이제 보다 나은 결과가 나오도록 할 힘은 우리에게 없는 듯하다. 앞으로 우리는 북한 땅에 존재하고 앞으로 점점 위력이 커질 핵무기의 그늘 아래 살아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꾀해야 할 최소한의 자구책은 북한 핵무기가 우리에게 제기하는 위협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암담한 상황에서도 지식은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