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거일 소설가 | ||
이 점은 개막 공연에서 잘 드러났다. 비록 평화와 조화라는 의례적 전언(傳言)으로 덮였지만, 그 멋진 공연이 드러낸 것은 자신들의 뛰어난 문화적 전통을 자랑하고 싶은 중국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갈 미래의 모습은 상투적 심상들로 이루어져,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따라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중국의 민족주의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중국의 민족주의는 어떤 성격을 지녔고 앞으로 어떤 모습을 할까.
민족주의의 심리적 바탕은 어느 민족에서나 같다. 그러나 민족의 독특한 역사적 조건들을 통해서 발현되므로 민족주의마다 독특한 모습을 한다.
위대한 고대 문명의 후계자인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줄곧 지배적 위치를 누려왔다. 중화(中華)라는 말이 가리키듯, 중국 사람들은 늘 자기 나라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겨왔다. 19세기에 유럽 문명과 마주치면서, 그런 세계관은 무참히 부서졌다.
1842년 아편 전쟁에서 져서 홍콩을 영국에 넘긴 뒤부터 1945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중국에서 물러날 때까지, 중국은 유럽의 여러 강국들과 일본에 시달렸고 갖가지 굴욕을 맞보았다. 이런 ‘백년 국치’는 중국이 바깥 세상과 교섭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규정했다. 자연히, 중국은 서방과 일본에 대해 반감과 불신을 드러냈다. 이제 초강대국이 되자 중국은 보다 공격적인 역사 해석과 대외 정책을 통해서 수치스러운 역사에서 받은 심리적 외상을 치료하려 애쓴다.
공산당 정권은 이런 민족주의를 부추겨왔다. 공산주의의 핵심인 명령경제를 버리고 시장 경제를 채택함으로써, 전제적인 공산당 정권은 통치의 정당성을 잃었다. 공산당 정권은 자신이 잃은 정당성을 민족주의에서 되찾으려 한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서 정당한 자리를 되찾으리라는 약속을 내놓은 것이다. 문제는 민족주의적 열정이 아주 거센 불길이어서 다루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대중은 나라의 이익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며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나라에 대해서 품은 자존심만을 끔찍이 생각하며 나라의 명예와 자존에 대한 모욕이나 훼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대중이 경험하는 민족주의적 감정은 본질적으로 민족적 자존심에 관한 것이고 오직 부차적으로만 나라의 이익에 관한 것이다.
중국 정부도 이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걱정스럽게도 중국의 민족주의는 정부가 통제하기 어려운 힘이 되었다. 사회를 철저하게 통제하는 중국 정부도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일은 허용하는 형편이다.
이처럼 중국의 민족주의는 걱정스럽다.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는 작은 이웃인 우리에겐 특히 걱정스럽다. 이제 중국의 민족주의에 관한 논의를 진지하게 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