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주주 교보생명 “인수 의사 있었다”vs우리은행 “사실 아니다”
서울 여의도 교보증권빌딩. 교보증권 매각설이 불거지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고성준 기자.
지난 12일 교보증권은 전날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우리은행과 매각협상설에 대해 답변공시를 냈다. 이날 교보증권은 “최대주주인 교보생명보험에 문의한 바 지분의 지속 보유, 합작회사 추진 또는 지분 매각 등 교보증권의 발전 방안으로 고려 가능한 사항 전반에 대해 통상적인 수준에서 검토 중에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교보증권의 최대주주인 교보생명도 우리은행의 인수 의사 타진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교보생명 측은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간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우리은행이 교보증권 인수 의사를 밝혔다고 알고 있다”고 전했다. 양측의 접촉이 있었고 원론적인 수준이지만 매각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고 볼 수 있는 정황들이다.
그런데 교보그룹 다른 관계자의 얘기는 조금 다르다. 교보그룹 고위 관계자는 “멀쩡한 회사를 팔 이유가 없다”면서 “매각할 계획도 없고, 검토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교보생명은 새로운 회계제도(IFRS17) 도입에 대비해 꾸준히 자본 확충을 해 왔다”면서 “교보증권을 매각해 자본확충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은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생뚱맞다는 반응은 우리은행 쪽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교보증권 인수를 논의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면서 “어디서 그런 이야기가 흘러나왔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양측의 말을 종합해보면 우리은행이 교보증권을 팔 생각이 있느냐고 교보생명에 문의했고, 교보 측은 “생각해 보겠다”는 정도의 답변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각자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교보증권은 올해 1분기 말 기준으로 교보생명이 전체 지분의 51.6%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다. 주가는 약 1만 1500원 수준으로, 시가총액은 4000억 원을 조금 넘는다. 만약 교보생명이 교보증권을 매각하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약 3000억 원가량의 이익을 얻을 것으로 증권가는 보고 있다.
교보증권의 1분기 기준 자기자본은 8212억 원으로 국내 증권사 15위권. 중소형 증권사로 분류되지만 자기자본이익률(ROE)은 9.4%로 우수한 편이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912억 원으로 2015년(973억 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실적을 기록하며 내실 있는 증권사의 입지를 다졌다.
지주사체제 전환을 선언한 우리은행이 교보증권을 인수하면 단숨에 금융그룹의 면모를 갖출 수 있다. 사진은 서울 소공로 우리은행 본점.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우리은행이 교보증권을 인수하면 증권업 라이선스를 얻을 수 있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선언한 우리은행으로서는 계열사에 증권사를 곧바로 추가해 금융그룹의 면모를 갖출 수 있다. 교보증권의 영업이익 중 투자은행(IB) 비중이 46%에 달하는 점도 눈길을 끈다. 대부분 중소형 증권사가 리테일 영업에만 의존하는 것과 달리 균형 있는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에서 거론되는 교보증권 매각가는 3000억∼4000억 원대로 상대적으로 부담도 적은 편이다.
여러 정황상 우리은행이 충분히 교보증권을 탐낼 만한 상황인데도 양측의 말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을 두고 시장 일각에선 “결국 인수 가격을 놓고 눈치게임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우선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인수설이 부각되며 교보증권의 몸값이 오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실제로 우리은행 인수설이 불거진 다음 날 교보증권 주가는 전날 대비 6.45% 오르며 기대감을 반영했다. 반대로 교보증권은 지주사 전환과 함께 M&A계의 큰손으로 떠오른 우리은행을 이용, 몸값을 올리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의아스러운 점은 교보 측이 굳이 교보증권의 몸값 올리기에 나설 이유가 있느냐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금융권에서는 의미심장한 해석이 나와 눈길을 끈다. 교보생명 상장을 요구하는 재무적투자자(FI)를 달래기 위해 교보 측이 교보증권 지분 매각에 나설 것이고, 이를 위해 주가 상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보생명은 투자수익을 얻으려는 FI들로부터 기업 공개를 하라는 압박을 꾸준히 받아 왔다. 이 때문에 교보생명 상장설이 여러 차례 흘러나왔지만 막판에 번번이 뜻을 번복한 전력이 있다. 이 때문에 FI들은 불만이 쌓여왔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교보생명이 교보증권 지분을 매각한 대금을 특별배당함으로써 이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계획을 실행하려면 매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가를 최대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제2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교보 측이 FI들로부터 받고 있는 압박은 알려진 것보다 강도가 꽤 센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들을 달래려면 캐시(현금)를 안겨주는 방법이 최선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