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그러나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달라거나 푹 쉬고 싶다는 올림픽 영웅들의 소박한 바람은 그야말로 희망사항으로 끝났다. 적어도 올림픽 종합 7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린 데 대한 국민적 열기가 식을 때 까지 이들 올림픽 스타들은 계속 인기의 표적으로 “즐겁고도 지겨운 시달림”을 각오해야 한다. 귀국 첫날부터 이들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의 바쁜 일정을 감당해야 했다.
오후 3시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30분 동안 합동 귀국 기자회견을 했고 서울시내로 들어 와서는 오후 5시 30분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한 시간 동안 해단식과 만찬시간을 가졌다. 이어 6시 반부터 30분 동안 부슬비를 맞으면서 광화문에서 서울광장까지 도보로 행진을 했다. 그중에는 경기 도중에 입은 부상으로 목발을 짚은 선수들도 있었다. 그리고 저녁 7시부터는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환영대축제에 참석, 일부 선수들은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날 선수들이 공식 일정에서 풀려난 것은 저녁 8시 반이 넘은 뒤였다. 그 이튿날에는 선수단과 임원 등 300여 명이 대통령 초청 청와대 오찬에 참석했다.
게다가 각 방송이 스포츠 스타들을 경쟁적으로 불러내는 관행은 이번에도 여전했다. 몇몇 스타급 메달리스트들이 이곳저곳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보였고 더러는 겹치기 출연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신문·방송이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들을 국민동생이니 뭐니 하며 경쟁적으로 띄우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5년 1월, 카타르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에서의 활약으로 일약 국민적 스타가 된 축구의 박주영 선수도 한동안 ‘운동이 아닌 일’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에서 예선에도 통과하지 못하자 박 선수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방송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염량세태(炎凉世態), 박주영은 이미 빛바랜 별이 됐기 때문이다.
원시인은 돌과 나무로 된 우상을 섬기고 현대인은 살과 뼈로 된 우상을 섬긴다는 말도 있지만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을 스타로 섬기는 세태까지 나무랄 생각은 없다. 다만 운동에 전념해야 할 선수가 여기 저기 한눈팔다간 자칫 경기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으로 일약 국민적 스타가 된 사격선수 강초현이 여기 저기 불려 다니느라 연습을 제대로 못해 전국체전에서 꼴찌로 전락한 ‘사건’이 그 같은 교훈을 담고 있다. 강 선수가 전국체전에서 꼴찌를 한 뒤 “제발 저 좀 놔 주세요”라고 외쳤다는 얘기는 아직도 큰 울림으로 남아있다. 올림픽 스타, 그들을 좀 쉬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