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 총장 | ||
미국 증권가의 붕괴는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세계 경제를 불황의 수렁으로 밀어 넣고 있다. 현재의 금융불안이 계속될 경우 각국의 기업, 금융기관들이 뒤엉켜 쓰러지고 실업자가 수없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경제 대재앙이 나타날 수 있다. 위기의 발단은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이다. 2001년부터 미국은 경기부양을 위해 저금리 정책을 펴 기준금리를 1%까지 내렸다. 그러나 경기부양은 미미하고 주택담보대출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주택시장이 거품으로 들뜨는 현상이 나타났다. 경제가 불안하자 미국은 2004년부터 금리를 다시 5%대로 올렸다. 그러자 비우량 담보대출이 연쇄적으로 부실화되면서 미 금융시장이 걷잡을 수 없는 붕괴상태에 빠졌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주택담보대출의 부실화가 아니다. 투자은행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낸 파생상품거래 시스템이 무너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은 주택을 담보로 하는 은행과 개인의 단순한 거래다. 이 경우 담보설정은 금융거래를 안심하고 할 수 있는 장치로써 채무자가 대출을 상환하면 즉시 해지되는 일시적 가공자산이다. 미국 금융기관들은 이러한 가공자산을 다시 담보로 하여 갖가지 증권을 발행하고 새로이 발행된 유가증권을 담보로 하여 또 다른 증권을 발행하는 등 다단계로 파생증권을 발행하였다. 그리고 국제 금융기관을 네트워크로 형성하여 거래를 하고 폭리를 취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이러한 거래 시스템의 밑둥을 구성하는 주택담보대출이 별안간 부실화되자 전 금융기관들의 기반이 흔들리는 총체적 위기가 닥친 것이다. 마치 주춧돌이 맥없이 빠지자 고층건물이 통째로 무너지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미 투자은행들은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증권시장을 다단계 파생상품 도박장으로 만들어 자본주의를 독극물로 마비시키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스스로 망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해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미국은 물론 유럽, 중국 등 세계적으로 집값 하락의 도미노는 시작단계다. 문제의 근원지인 미국은 긴급 구제금융 조치만 계속 취할 뿐 특별히 손을 쓰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 경제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쓰나미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외환 보유액이 2400억 달러라고 하나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외채가 2200억 달러나 된다. 여기에 증권시장에서 외국자본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환율, 금리, 물가를 치솟게 하여 실물경제의 숨을 막고 있다. 더구나 유일한 경제 버팀목인 수출마저 줄어들어 올해 들어 무역적자가 150억 달러나 된다.
현재 우리 경제는 건설경기나 활성화시켜 살릴 수 있는 한가로운 상황이 아니다. 비장한 각오로 경제위기에 대처하고 적극적 자세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할 때다. 이런 견지에서 외환보유액 추가 확보와 금융시장 안정에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또한 위기일발의 부도위기에 처한 중소기업과 서민가계에 대한 구제책도 강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강력한 신성장동력을 한시 바삐 발굴하여 위기를 스스로 이겨내고 세계경제의 혼란을 기회로 삼는 지혜와 용기를 모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