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지지층 과하게 잡히는 문제 드러나기도”
20대 총선과 비교하면 이번 6·13 지방선거는 ‘뻔한’ 선거였다. 여론조사 결과의 높은 정확도로 신뢰도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20~30대 응답자의 과도한 응답 및 집계로 반대 성향의 응답자를 놓치는 것은 앞으로 여론조사기관들이 풀어나가야할 과제다. 사진은 지난 6월 13일 서울 은평구 역촌동 5투표소. 최준필 기자
이번 여론조사 정확도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휴대전화 가상번호 도입, 엄격해진 여론조사 규정, 있는 듯 없는 듯한 ‘변수’가 그것이다.
안심번호(가상번호)란 휴대전화 이용자의 실제 번호가 노출되지 않도록 이동통신사가 임의로 생성한 가상의 일회용 전화번호이며, 이를 사용한 여론조사의 응답률은 비교적 높은 편이다. 무엇보다 낮 시간에 밖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젊은층을 대상으로 응답을 받을 수가 있어 그동안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던 젊은층의 여론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여론조사 총 1337건 중에 안심번호를 활용한 조사는 992건으로 74%였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김대진 조원씨앤아이 대표는 “여론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모집단이다. 과거 유선전화 여론조사에선 모집단에 젊은층이 부족했는데, 안심번호를 사용하면서 모집단이 잘 채워졌다”고 분석했다. 김능구 이원컴 대표도 “과거에는 KT에서 만든 전화번호부를 가지고 유선조사만 실시했는데, 2006년부터 KT가 이를 만들지 않았다. 이를 가지고 조사를 하니 모집단이 실제집단과 동떨어지게 됐는데 최근에는 통신사로부터 무선번호를 받아서 조사할 수 있게 돼서 정확도가 올라갔다”며 “안심번호를 사용해 무선전화 응답자에게 조사한 게 주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측에서 더 정확한 여론조사를 위해 새로운 조사 기준을 제시한 것도 한몫했다. 여태까지의 공직선거법에서는 여론조사를 성별, 연령별, 지역별 가중률이 0.4~2.5가 되도록 의무화했다. 하지만 최근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며 가중률이 0.5~2.0으로 더 까다로워졌다. 이는 각 연령별로 가중치를 최소 50명을 넘도록, 그리고 최대 200명이 넘지 않도록 정한 것으로 각 연령대의 응답자들이 골고루 응답할 수 있도록 체계화시킨 것이다.
아울러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여론조사 결과를 뒤집을 만큼 강력한 ‘한 방’이 없었다. 민주당의 ‘미투 사태’,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선고, 남북 간의 해빙 무드 등은 이미 선거 3~4개월 전부터 이슈가 됐던 사안들이다. 선거 직전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인 ‘깜깜이’ 기간에 기존의 여론조사 결과와 선거 판세를 뒤집을 만한 요소는 ‘이재명-여배우 스캔들’뿐이었다.
홍영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선거일로부터 6일 전, 10일 전, 2주 전의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투표 결과는 큰 차이가 없었다. 20대 총선 때는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공천파동으로 와르르 무너지는 과정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변수들이 ‘깜깜이’ 기간 이전에 미리 반영돼 버렸다”고 분석했다.
최준필 기자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이번 여론조사를 두고 실제 투표 결과와 일치했다는 호의적인 평가를 내놓았지만, 일부 전문가는 여론조사기관의 자기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대진 대표는 “여론조사에서 김경수 경남도지사 후보가 김태호 후보를 20%p 이상 차이를 벌리며 이길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9%p에 머물렀다. 안심번호를 통해 과거에 잡히지 않던 20~30대 응답자들이 골고루 반영되다보니 지나치게 치우친 결과가 나왔다”고 꼬집었다.
김대진 대표는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도 여론조사에선 10% 정도로 예상을 했는데, 실제로는 19% 정도가 나왔다. 여론조사전문업체들이 다시 곱씹어봐야 할 부분”이라며 “여권이 강세고 문재인 대통령에 ‘긍정’을 보이는 지지층이 응답을 많이 하다보니 2, 3등의 정당 후보 지지율이 낮게 측정되고 있다. 모집단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끔 신중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문재인 지지층이 (여론조사에서) 더 과도하게 잡힐 텐데, 반대층을 어떻게 여론조사에 반영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