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거일 소설가 | ||
생물학과 의학이 크게 발전한 현대에선 그 충고는 새로운 뜻을 아울러 지니게 되었다. 우리 몸에 관해서 잘 아는 것은 우리가 건강하게 오래 사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된다. 우리는 정확한 생물학 지식과 의학 상식을 갖추어 우리 몸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움직이는가 알아야 한다.
근년에 심리학과 진화생물학이 발전하면서 그 충고는 다시 새로운 뜻을 지니게 되었다. 사람은 ‘깨끗한 칠판’과 같은 마음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본능들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우리가 자신의 마음과 행태에 관해서 정확한 지식을 지니는 것은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데 긴요하다.
그렇게 독특한 행태들 가운데 요즈음 우리의 관심을 끈 것은 공황(panic)이다. 아주 정상적인 사람들이 모두 갑자기 두려움에 질려 집단적으로 비합리적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이번 금융 위기를 촉발한 이 현상은 도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나오는가.
그 단서는 물리학에서 찾을 수 있다. 수많은 입자들로 이루어진 물체는 개별 입자들의 행태를 단순히 합친 것과는 다른 독특한 행태를 보인다. 물리학자들이 집합적 행태(collective behavior)라 부르는 그 현상은 입자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나온다.
수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도 그런 집합적 행태를 보인다.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집합적 행태의 두드러진 특질은 모습이 갑자기 바뀌는 상전이(phase transition)다. 우리에게 익숙한 상전이의 예는 액체인 물이 섭씨 0도에서 고체인 얼음으로 바뀌는 현상이다. 온도나 압력과 같은 중요한 변수들이 어떤 수준을 넘으면 문득 모든 입자들이 같은 행태를 보인다. 그래서 그 체계의 모습이 갑자기 바뀐다.
사람들의 집합적 행태에서도 상전이가 일어난다. 사람은 둘레의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하는 성향이 아주 크다. 실제로 사람들은 떼지어 몰려다니는 짐승들의 무리처럼 행동한다. 평화로운 시위가 흔히 폭동이 되고 온건한 사람들이 ‘인민 재판’으로 잘 아는 이웃을 죽이는 일은 바로 그렇게 무리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나온다. 이 점에서 입자들의 상전이와 사람들의 상전이는 본질적으로 같은 현상이다.
공황은 바로 그런 상전이에서 나온다. 두려움을 느낀 사람들이 일정 수준보다 많아지면 문득 모두 위험을 회피하게 된다. 사자는 사람들은 없어지고 모두 팔자고 나선다. 그래서 증권 시장에서 투매가 나오고 은행들 사이의 신용 거래가 끊긴다.
공황에 휩쓸리면 정상적 판단을 하기 어렵다. 그럴 때 우리가 보이는 집단적 행태에 대한 지식은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군중의 격앙된 분위기 휩쓸려 뒤에 후회할 극단적 행동을 삼갈 수 있다. 델포이의 신전에 쓰여진 또 하나의 훌륭한 충고는 “어떤 일에서든 극단을 피하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