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오늘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입법과 사법, 행정의 3권을 분립하고 비록 통치자가 임명하는 직책이라도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갖도록 해 놓은 것은 권력이 법을 정치적 도구로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있다고 해서 독립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독립성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데도 권력자의 눈치와 구미에 따라 법의 잣대가 흔들리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法諺)이 있지만 그동안 사법부가 최고 권력자의 눈치를 살피느라 차일피일 미루다가 정권이 바뀐 뒤에야 판결을 내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1960년 4월 26일 오전 11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성명을 발표하자 이날 오후 1시 긴급소집된 대법원 연합부는 <경향신문> 무기정간 처분을 정지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권력의 눈치를 보며 1년 동안 차일피일하던 사건을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난 지 2시간 만에 <경향신문>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대법원이 이럴 정도였으니 검찰이나 다른 사정기관의 ‘직무상 독립성과 중립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권위주의 정권이 무너지면서 법조는 물론 직무상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기관이 권력의 눈치를 살피는 일은 당연히 없어져야 하고 이미 그렇게 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 ‘쌀 직불금’ 파동과 관련해 감사원의 ‘실무자협의회’가 발표한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라는 글을 보면 감사원도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모양이다. 감사원이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는 법규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얘기다. “부당한 외압에 버팀목이 되어야 할 간부들이 침묵하는 현실”이라느니 “영혼 없는 감사원” 등등의 가시 돋친 표현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직무상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데도 권력으로부터의 부당한 외압에 흔들리거나 입신양명을 위해 권력에 줄을 대는 사례가 과연 감사원뿐이겠는가. 이번에 감사원의 독립성이 크게 문제된 것은 ‘쌀 직불금’ 사건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영혼 없는 감사원’뿐만 아니라 독립성이나 중립성을 반드시 지켜야 할 공직사회가 그동안 권부의 눈치를 살피고 정치권력의 부당한 압력에 무릎 꿇었다면 이번 기회에 그 부끄러운 속박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도대체 법으로 보장해 준 독립성이나 중립성이 왜 권력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가. 아직도 법이 정치권력의 자의에 휘둘리고 그래서 ‘비리법권천’이란 말이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 그런 세상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