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거일 소설가 | ||
그렇게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미군은 피난길에 나선 북한 주민 9만 8000명을 배에 태워 무사히 남한으로 데려왔다. “배들이 충분했다면 그 숫자의 곱절을 구할 수 있었다”고 그 작전을 지휘한 제임스 도일 제독은 술회했다.
메레디스 빅토리호가 피난민들로 가득 차자, 디노 사바스티오 일등항해사가 레너드 라루 선장에게 배에 탄 피난민들은 모두 1만 4000명이라고 보고했다. 이것은 역사상 배 한 척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탄 기록이다.
화물선이라 메레디스 빅토리호에는 여객들을 위한 시설이 전혀 없었다. 피난민들이 가득 들어찬 선창들은 깜깜하고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물도 음식도 없었다. 화장실이 없었으므로 더러움과 냄새도 지독했다.
배가 흥남항을 빠져나와 남쪽으로 향했을 때, 일등항해사가 올라와서 함교(bridge)의 선장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선장님, 우리가 몇이나 태웠죠?”
선장이 대꾸했다, “당신도 알잖소? 1만 4000명 아니오?”
그러자 일등항해사가 득의의 얼굴로 외쳤다. “선장님, 이제 1만 4001명입니다.”
엄동에 갈 곳도 모른 채 무작정 외국군대를 따라 나서서 세찬 바람에 쓸리는 부두에서 여러 날을 보내고 깜깜한 선창에서 물도 음식도 없이 견디는 피난길에서 새 생명이 태어난 것이다. 선원들은 기꺼워하며 그 아이에게 ‘김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사흘 뒤 배가 부산항에 닿자 선원들과 피난민들은 환호했다. 그때 부산항만청의 한국인 관리들이 승선해서 부산항에 들어올 수 없다고 통보했다. 충격을 받은 선원들에게 그 관리들은 “거제도로 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라루 선장이 사정했다. “이 지치고 배고픈 피난민들을 보시오. 내가 물자를 좀 얻어볼 테니 잠깐만 여기 머물게 해주시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아는 부산항의 미군들과 연락해서 물과 쌀을 얻어서 배에 실었다.
다음날 아침 거제도로 향하면서, 선장은 일등항해사에게 말했다. “어젯밤 쌀하고 물을 실을 때, 문득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것이 생각났소. 우리 선원들은 피난민들에게 자기 옷가지들을 주고 있었는데, 가슴이 하늘에서 온 것 같은 무엇으로 찹디다. 크리스마스의 메시지가, 친절과 선의의 메시지가 찾아온 것이었소. 이 슬픔으로 가득한 배에. 여러 세기 전 예수의 가족처럼, 전제적 권력으로부터 도망친 이 배의 사람들에게.”
갑자기 삶이 어려워진 터라, 이번 성탄절엔 58년 전에 라루 선장이 한 얘기가 더욱 깊이 울린다. 그날 낮 메레디스 빅토리호가 거제도에 닿았을 때, 그 배의 피난민 수는 1만 4005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 힘든 항해에서 태어난 다섯 아기들이 며칠 뒤면 예순 살이 된다. 메레디스 빅토리호는 뒤에 ‘기적의 배’로 불렸다. 그 다섯 아기들의 삶도 작은 기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