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대 교수 이주향 | ||
왜 서양사람들이 동양사상을 사진으로 구현하고 있는 그를 좋아할까? 아타 선생의 사진을 보았나? 그의 사진은 아름다운 풍경사진이 아니다. 그렇다고 기억하고 싶거나 버리고 싶은 순간도 아니다. 그의 사진은 차라리 범주다. 그가 사진을 찍을 때마다 사람들은 세상을 보는 방식,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를 반성하게 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포함한 뉴욕시리즈에서 내가 받은 인상은 ‘정적(靜寂)’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잘나고 바쁘고 빠른 것들이 모여 있는 현대문명의 심장 뉴욕이 아타의 카메라를 통과하면 저승사자의 도시 같은 고요와 정적만이 남는다. 움직이는 모든 것이 사라졌으니까. 자동차들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사라졌다. 움직였던 것은 꼭 그 속도만큼 사라지고 있었다. 아타 선생이 말한다. 빠르게 움직인 것들은 빠르게 사라진다! 남는 것은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면서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은 바로 그것뿐이다. 그것이 그의 ON-AIR 프로젝트다.
베니스에서 선보일 프로젝트는 한발 더 나아간다. 이름하여 인달라 시리즈. 인달라 시리즈는 모스크바와 베를린, 프라하, 파리, 로마 등 한 도시당 만 컷의 이미지를 촬영해 하나로 만든 것으로 얼핏 보면 아무 것도 없는 회색빛 화면 같다.
그는 한 장의 사진을 만들기 위해 만 컷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사진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모든 것을 합치면 텅 빈다! 그것이 텅 빈 사진이 보여주는 메시지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것도 없는 백지라 느끼는 작품은 텅 빈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꽉 찬 것이다. 꽉 찬 것이 텅 빈 것이라는 사실은 말장난이나 논리의 장난이 아니라 그가 땀방울을 바쳐가며 건져올린 동양적 진리다. 한 장의 사진 속에 만 장의 사진이 녹아있다! 얼마나 대단한가! 한 존재 속에 이미 온 우주가 녹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므로. 아타의 사진처럼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개체는 이미 인드라망의 우주를 품고 있다. 한 존재는 우주가 낳은 것이고, 우주를 삼킨 것이다.
물론 그저 텅 빈 사진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굳이 만 컷이 아니어도 된다. 9000컷이어도 되고, 8000컷이어도 된다. 그러나 아타는 정직하게 만 컷을 찍었다.
동양에서 ‘만’이란 전부인 세상의 상징이므로 거기까지 성실하게 가본 것이다. 그렇게 잔꾀부리지 않는 것이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아타 선생의 뚝심이다.
누군가가 그런 얘기를 했다. 아타 선생은 사진가가 아니라 예술가라고. 글쎄, 나는 생각한다. 그는 예술가라기보다 철학자고 철학자라기보다 구도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