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거일 | ||
서글프게도, 이런 조치는 현 정권의 지적 빈곤을 드러낸다. 그것은 현 정권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지식의 본질, 교육의 성격, 그리고 우리 교육 산업의 구조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을 지녔음을 드러낸다.
먼저 우리를 실망스럽게 만드는 것은 교육 개혁을 위한 조치가 규제의 모습을 하고 나왔다는 점이다. 우리 교육은 더할 나위 없이 엄격히 규제된 산업이다. 모든 학교들이 세세한 데까지 정부의 지도와 간섭을 받는다. 따라서 규제를 푸는 조치가 먼저 나오는 것이 순리다.
사교육을 나쁜 것으로 보는 견해는 교육과 지식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나온 단견이다. 똑같은 지식인데, 학교에서 교사들이 가르치면 좋고 학교 밖에서 다른 사람들이 가르치면 나쁘다는 생각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지식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므로, 사교육은 폄하가 아니라 권장되어야 한다.
오후 10시라는 기준도 참으로 자의적이다. 가르치는 사람들과 배우는 사람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일에서, 관리들이 자의적으로 설정한 특정 시간이 지나면 그 일이 불법이 되도록 하는 것은 자유주의의 원칙에 명백히 어긋난다.
사교육은 본질적으로 공교육을 보완한다. 정부가 제공하는 학교 교육의 부족한 점들을 시장이 채워주는 것이다. 사교육이 공교육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찬찬히 살피면, 그렇다는 것이 드러난다. 따라서, 통념과는 달리, 사교육은 큰 문제들을 안은 공교육이 그런 대로 버티어 나가도록 돕는다.
공교육이 잘 이루어지면, 사교육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교육 개혁은 공교육의 문제들을 푸는 조치들이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공교육은 교사들에겐 직무의 어려움보다 보수가 훨씬 높은 천국이지만 학생들은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연옥이다.
지금 우리 공교육은 너무 엄격한 규제 때문에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런 규제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이 개혁의 요체지만, 규제 완화나 철폐는 무척 힘들다. 정부 관리들도 교사들도 규제에서 혜택을 입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들이 교육 개혁을 부르짖었지만 모두 실패한 까닭이 거기 있다. 게다가 지금은 교사 노동조합들의 힘이 워낙 커서, 진정한 개혁이 성공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당연히, 학원 교습을 규제하는 이번 조치는 적잖은 사회적 비용을 늘리고 실패할 것이다. ‘사교육과의 전쟁’이란 표현도 적절하지 못하지만, 그 ‘전쟁’은 정부가 이길 수 없는 것이다. 공교육이 개혁되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아득한 세월이 걸릴 터인데, 사교육이 어떻게 쉽게 없어지겠는가? 지금까지 사교육을 제어하는 데 성공한 정권은 없었는데도 자신은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지식과 교육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나왔을 터이다. 무지와 오만이 겹치면 늘 위험하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