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이광훈 | ||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내내 갇혀 있다시피 했던 ‘원형감옥’에서 탈출하는 길은 그런 극단적인 방법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홈페이지를 폐쇄한 데다 건강이 악화되어 글을 읽을 수도 없고 쓸 수도 없게 된 지난 한 달간의 칩거(蟄居)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동안 단 한 번의 외출은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을 다녀온 것뿐이었다. 그 외출조차도 새벽에 떠나 그 이튿날 새벽에 돌아올 정도로 빡빡한 일정에다 점심도 버스 안에서 김밥으로 때운 초라하고 군색한 나들이였다. 그리고 다시 20여 일을 더 견디다 끝내 되돌아 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고 말았다.
노 전 대통령은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와 얽힌 형님의 수뢰사건이 터지자 전국 각지에서 사저(私邸)를 찾아 온 사람들 앞에 나서는, 그것도 하루에 몇 차례씩 나서던 ‘일일행사’를 중단했다. “나와 주세요”라고 외치면 문밖에 나와 쑥스러운 듯 인사를 나누고 몇 마디 하던 ‘소통의 창문’을 스스로 닫아버린 것이다. 사저가 24시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카메라와 취재진들에 둘러싸여 밖으로 나갈 수도, 밖에서 사람이 찾아 올 수도 없는 ‘원형감옥’처럼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바깥세상과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였던 사이버 공간을 통한 홈페이지마저 절필선언과 함께 문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무도 만나지 않고,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 철저한 유폐(幽閉)의 나날이 시작되었다. 그에게 2009년 봄은 유난히도 길었고, 유난히도 외로웠고, 유난히도 마음고생이 심했던 나날이었다. 아마도 이 기간 동안에 그는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고 김현승 시인이 읊었던 절대 고독의 경지에 젖어 들고 있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는 언제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였고, 언제나 외로웠고, 언제나 자신의 정치소신을 고수했던 외톨박이였다. 대통령 자리에 있을 때도, 임기를 마치고 봉하마을로 돌아와서도 그는 언제나 혼자였고 언제나 외로웠다. 마지막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도 그는 혼자였다. 부엉이바위 위에서도 그는 혼자였고 몸을 던진 후에도 한참 동안 그는 혼자였다. 문득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갈망하지 말고/남의 덕을 가리지도 말며/혼탁과 미혹을 버리고/세상의 온갖 애착에서 벗어나/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언론인 이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