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상 고려대 교수 ·전 총장 | ||
그러나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MB노믹스의 핵심이 와해되는 것이다. 감세정책의 후퇴 때문이다. 중도실용론이 나오자 정부는 부자감세라는 이유로 감세정책에 제동을 걸고 있다. 기업의 임시투자세액공제를 폐지하고 신용카드에 대한 소득공제도 한도를 줄일 방침이다. 증여상속세의 인하 추진도 중단할 예정이다. 더 나아가 다주택자의 전세 임대소득 과세, 술과 담배에 대한 죄악세 강화 등 증세방안까지 강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기조 변화가 서민경제회생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경기가 침체하여 증세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기침체만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실업과 불완전고용, 생활물가 상승, 가계부채와 신용불량 등 서민들의 생활고가 더 커질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감세정책은 시장기능의 숨통을 트게 하는 활력소이다. 실제로 국민의 조세부담을 덜어줄 경우 기업들의 투자의욕과 근로자들의 근로의욕이 높아진다. 또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 투자와 소비가 맞물려 늘어나는 선순환을 구축한다. 따라서 서민들에게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순기능을 발휘한다. 물론 세금감면이 투자와 소비로 연결된다는 전제조건이 성립해야 한다. 정부는 감세와 증세를 놓고 갈팡질팡하면 안 된다. 오히려 감세정책을 올바르게 추진하여 서민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중도실용론에 대한 실로 큰 우려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다. 보수일변도인 정부가 중도실용론을 제기하는 것은 국면을 전환하려는 정치적 술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신은 그동안 정부가 펴온 정책이 공교육 강화를 주장하면서 과열교육을 조장하고, 재래시장을 보호한다고 하면서 대형연쇄점을 확산시키는 등 거짓이 많았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인적쇄신을 과감히 추진하여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부로 모습을 바꿔야 한다. 정책 책임자들이 바뀌지 않으면 국민의 불신과 적대감은 해소되기 어렵다.
중도실용론에 걸맞은 인사를 등용해야 한다. 다음 4대강 정비 같은, 국론이 분열되어 있는 핵심 사업을 축소하거나 포기하는 용기를 내야 한다. 그리고 중소기업 회생, 자영업 발전, 일자리 만들기 등 중산층과 서민들이 회생할 수 있는 정책들을 우선적인 국정과제로 삼아야 한다. 소액대출과 정부보증 확대, 교육자 의료비 지원, 전기요금 할인과 같은 일시적인 생색내기 정책을 내세우면 안 된다. 이렇게 하여 정부는 중도실용론이 명실상부한 국정기조로 자리를 잡게 해야 한다.
고려대 교수·전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