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 ||
“나는 우리가 초롱이를 돌봐준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은 초롱이가 우리를 지켜줬던 거야. 한참 어려울 때 집안에 들어온 강아지거든. 힘들어서 집에 들어가 그저 핸드백을 툭, 던져놓고 20분씩, 30분씩 초롱이를 안고 있었던 적이 참 많아. 그러면 초롱이는 내 아픔을 아는 지 숨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있어주는 거야. 생각해보면 그게 내겐 기도였던 거 같아. 초롱이는 울 수조차 없을 때 가장 낮은 자리에서 편안히 나를 위로해준 사랑이었어!”
그렁그렁한 눈으로 세상을 떠난 개에 대해 회상하는 선배 옆에서 선배의 남편이 거든다.
“초롱이 떠나기 전엔 바람 냄새, 풀냄새 맡게 해 줘야 한다고 저녁 내내 풀밭을 돌아다녔는데, 그 다음날 새벽에 떠난 거예요. 장례식에, 화장장에, 개 한 마리 죽었다고 너무 요란한 게 아닌가 싶다가도 감정의 격랑 폭이 크지 않은 여자가 슬픔에 빠져 제대로 자지도 못하니까, 저건 존중해줘야 하는 슬픔이구나 싶었어요.”
선배는 인간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고, 개와 나무와 바람에 비해 뭐 그리 대단한 존재겠느냐고, 오히려 인간이 특별하다는 생각이 인간을 타락시키는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은 인간비하가 아니었다. 그 믿음으로 그녀는 개와, 나무와, 자연과, 마침내 지구와 소통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개와 인간의 존재론적 차이를 지울 줄 아는 선배가 좋은 책이라며 실천하면 좋겠다고 권해준 책이 <어머니 지구를 살리는 녹색세대>였다. 지금은 라디오 진행자이지만 어린 시절엔 숲속에서 애완견과 뛰어놀며 뒤뜰에서 기른 유기농밀로 만든 빵을 먹으며 자란 린다 실베르센과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들이 함께 쓴 책이었다. 그 책은 도시에 사는 시민들을 위해 지구를 살리기 위해 최소한 이것만큼은 해보자고 권하는 책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것이다.
*유기농 식품을 먹자. 유기농을 먹으면 나이가 들수록 젊어 보인다. 유기농식품이 비싸도 내 건강을 위한, 지구의 건강을 위한 거라면 전혀 비싼 것이 아니다. *샤워를 길게 하지 말자. 3분 안에 샤워를 끝내면 엄청 물을 절약할 수 있다.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을 모아 공짜 시장을 열어보자. 정(情)도 나눠가질 수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걸어서 등교하거나 자전거를 이용해보자.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아니더라도 친환경적으로 운전하는 방법이 있다. 속도를 줄이고 뒷트렁크를 비우고 급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 된다. *물비누 대신 비누를 사용하면 물이 훨씬 절약된다. *양치질하는 동안 물을 흘려보내지 말자. *세탁, 설거지를 할 때 인산염이 들어있는 세제는 쓰지 말자. 물고기와 식물을 질식시키는 주범이다.
좋은 책이라고 생각되면 여러 권을 사서 나눠주는 것, 그것 또한 세상물정에 어두운 듯한데 세상 한가운데서 자기색깔을 잃지 않고 사는 선배의 일면이었고 힘이었다. 그런 선배를 보면서 생각한다. 세상은 비정하고 잔인하다 믿으며 늘 전쟁을 하면서 삶을 확인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드물게는 자기주변의 존재들을 살피고 아끼며 삶을 확인하는 사람이 있는 거라고.
수원대 교수 이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