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 ||
양김시대의 한 축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일찍 다녀갔습니다. 외부의 적을 만나면 힘을 합쳐 치열하게 싸웠고, 내부에서는 또 양보할 수 없는 경쟁자가 되어 피가 터졌을 그가 당신 가시는 길에 모처럼 아름다운 드라마를 만들었네요. 경쟁자로서, 동지로서 복잡한 심정을 툭툭 털고 이제는 화해할 때라고. 그가 내민 손을 당신이 잡아주셨으리라 믿습니다.
많고 많은 문상객 중에 역시 권양숙 여사가 짠, 합니다. 아마 당신의 이희호 여사가 가장 위로를 받았을 조문객이었을 겁니다. 권 여사와 이 여사가 서로 부둥켜안고 그저 눈물을 쏟아내는데,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네요.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독하디 독한 이별의 슬픔으로 아리디 아린 삶을 살아내고 있는 여인네가 찾아왔는데!
잊을 수가 없습니다. 노 전 대통령 장례식장에서 권 여사의 손을 잡고 꺼억 꺼억 목 놓아 울던 당신의 모습! 그 때 당신은 생각 많고 고뇌 많은 지적인 노장이 아니라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린 순수한 어린애였습니다. 온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는 표현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음을 절절하게 느꼈습니다.
한 사내는 운명이라며 바위에서 뛰어내렸고, 또 다른 사내는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끼며 그 운명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죽어서도 죽지 마시라! 삶이 자기만의 것일 수 없는 사람들은 죽음도 자기만의 것일 수 없겠습니다.
죽어서도 죽지 마시라! 처음엔 그 말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당신의 기도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알겠습니다. 그 문장은 대한민국을 향한 당신의 유언이었습니다. 죽어서도 죽을 수 없다는 의지였습니다.
당신은 오랜 세월 강대국에 의해 결정되어온 우리 민족의 운명을 절절히 안타까워 한 야인이었습니다. 당신의 삶은 통째로, 강대국의 이익을 대변해온 특권층과의 싸움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당신이 대통령이 된 것은 어쩌면 기적이었겠지요. 당신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분단국가의 과제를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분단국가의 고뇌를 풀어내려 했던 정치인이었으니까요. 그 결과가 “우리끼리, 우리 민족끼리”였습니다. 당신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만들었던 6·15공동선언이었습니다. 그렇지요,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해야지요. 시절이 하수상하여 당연한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되기까지 반세기가 걸린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며 북측에서도 정중하게 조문단을 보내왔습니다. 이것이 죽어서도 죽지 못할 당신의 염원이 풀리는 계기였으면! 이명박 대통령은 민족화해를 향한 당신의 열망과 업적은 국민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 문장을, 이 대통령이 당신의 뜻을 이어 민족화해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으로 읽어도 되겠습니까?
당신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남과 북이 다시 “우리끼리, 우리 민족끼리”를 확인하게 되길 바랍니다. 당신이 죽어서는 죽을 수 있게, 편안히 잠들 수 있게.
수원대 교수 이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