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 ||
시인으로 빛을 보지 못한 채 시골에 묻혀 있던 김소월(金素月)이 스승 김억에게 보낸 편지에도 가을을 앓는 문사의 쓸쓸한 감상이 짙게 배어 있다. “…지사(志士)는 비추(悲秋)라고, 저는 지사야 되겠습니까만 근일 몇 며칠 부는 바람에 베옷을 벗어놓고 무명 것을 입고 마른 풀대 욱스러진 들판에 섰을 때 마음이 어쩐지 서러워지옵니다. 저 구성(龜城) 와서 벌써 십년입니다.…” 여름에 입던 베옷을 갈아입고 마른 풀대 우거진 들길에 서서 서울에 있는 스승의 소식을 기다리는 소월의 쓸쓸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을에 맛보는 쓸쓸한 감상이 어디 문사뿐이겠는가. 50여 년 동안 중국을 통치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한 무제 유철(劉徹)도 뱃놀이를 하던 중 ‘추풍사’라는 노래를 불러 흘러가는 세월을 탄식했다. “퉁소소리와 북소리 울리고 뱃전 두드리며 노래하니/환락이 다한 곳에 슬픈 마음 너무도 많아라/젊은 때가 그 얼마이더냐 아, 어이 하리, 이 늙음을 어이 하리.” 한 무제는 황제의 권력으로도 흐르는 세월을 붙잡지 못하고 죽음 앞에서는 누구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지난 주 우리는 또 한 분의 전직 대통령을 떠나보냈다.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충격적인 죽음’과는 달리 이번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하늘이 정해 준 천수(天壽)를 누린 데다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숨을 거둔 고종명(考終命)이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새삼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하는 것은 그가 우리 정치사에 남긴 궤적(軌跡)이 워낙 크고 뚜렷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은(高銀) 시인은 “김 전 대통령은 창파(蒼波)의 삶이었고 태산의 죽음”이었다고 말했다.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세간의 훼예포폄(毁譽褒貶)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발자국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퇴장은 해공, 유석, 해위, 진산 등 아호정치에 이어 정치인의 이름을 YS니 DJ, JP 등 영문이니셜로 부르던 ‘3김정치’ 시대가 끝났음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그동안 정치적 격변기마다 신군부니 4·19세대니 386세대니 새로운 정치세력이 부상되곤 했다. 그러나 3김은 지난 40년간 야(野)에 있든 여(與)에 있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기존의 정치적 자장(磁場)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변수(變數)로 작용하곤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퇴장으로 그 ‘3김’시대가 마감된 것이다. 3김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유한(有限)한 존재였을 뿐이다. 공자가 흐르는 냇가에 앉아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했다는 ‘천상(川上)의 탄(嘆)’도 유한한 인생의 섭리를 꿰뚫은 노래였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흘러 쉬는 일이 없구나”(逝者如斯夫 不舍晝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언론인 이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