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거대한 리얼리티쇼 기획자…멋진 장면 한번 더 연출할 것”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삼남’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이에 따른 남북화해시대의 경협 전망과 민화협의 역할 등에 대해 답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어떻게 지내나. 최근 해외에 다녀왔다고 들었다.
“남북관계 개선 문제 외에도 요즘 해외출장을 자주 간다. 과거 일본에 강제징용돼 돌아가신 분들 중 아직 일본에 남아있는 유골이 많다. 과거 종교단체와 민간단체에서도 이 분들의 유골송환을 조금씩 하긴 했지만, 아직도 우리 국민들에게 많이 안 알려져 있다. 이에 이들의 유골 송환을 민화협뿐만 아니라 관련 시민단체와 북한 등도 참여하는 범민족적 사업으로 진행하려고 준비 중이다. 과거사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청산하는 것은 남과 북 모두 동의할 수 있는 민족 동질성 회복의 과정이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열렸다. 어떻게 평가하나.
“일단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의지, 이를 통한 경제발전 의지 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굉장히 의미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김 위원장을 상당히 존중해주고, 북한 상황을 이해해주는 태도를 보였다. 그것은 아주 획기적인 변화다. 핵과 미사일을 몇 달 안에 폐기하라는 이런 기술적 문제보다, 오히려 북미 간에 상호존중·이해·신뢰가 구축되고 있는 게 훨씬 더 의미 있다고 본다. 그게 돼야 평화의 가능성이 보이고, 전쟁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핵화의 목적도 결국 같은 것 아닌가.”
━반면 자유한국당 등 일부 보수세력은 CVID 등이 포함되지 않은 실속 없는 합의를 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이번 정상회담이 지금까지와는 백팔십도 발상의 전환으로 이뤄진 점을 이해 못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제의를 받고 정상회담 얘기가 나온 건 3개월밖에 안 된다. 또한 북미가 물밑 협상을 시작한 것도 2개월 남짓이다. 구체적 합의가 어떻게 금방 나오겠느냐. 과거 북한과 정상회담은 하부 실무진에서 협상해 한 단계씩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는 실패했다. 반면 이번에는 정상끼리 원론적인 큰 줄기를 먼저 합의한 다음 밑으로 내려가겠다고 했기 때문에, 구체적 합의는 앞으로 실무 협상을 통해 나올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비핵화를 이행 안 한다면 모를까, 원론적인 합의가 이뤄진 상황에서는 방식이나 시점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명확한 합의 없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일시중단하는 등의 결정을 두고도 말이 많다.
“북한이 구체적 양보를 하기 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결단을 내린 것이 오히려 비핵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과거 북한 정권은 그동안 핵을 보유해야만 강성대국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핵개발 반미투쟁 등으로 정권의 정통성을 만들어 왔다. 김 위원장이 이를 백팔십도 바꿔 비핵화를 하려면 내부적으로 명분이 필요하다. 갑자기 핵을 버리겠다고 하면 북한 국민들은 공황상태에 빠질 수 있다. 북한이 민주국가가 아니라고 해서, 국민들의 여론을 무시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핵과 반미투쟁이 이제 와서는 약간 족쇄가 된 것인데, 그 상황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정상국가 원수로서, 동등한 파트너로 대접해줬기 때문에 김 위원장도 북한 주민들에게 ‘이거 봐라, 우리가 승리했다. 더 이상 핵을 통한 반미투장은 안 해도 된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삼남’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조만간 북한의 초청을 받아 북한에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
“보수집단에서 불가역적 비핵화라는 말을 계속하는데, 이는 압박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사찰하고 감시해도, 북에서 다시 핵개발하려고 마음먹으면 막을 수 없다. 그럼 그런 마음을 먹지 않도록, 스스로 핵을 다시 만들 이유가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어야 한다. 북한 주민들이 핵이 없는 게 경제성장과 생활수준 향상에 더 낫다고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혁개방을 할 수 있도록 경협이 필요하다.”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철도개발 등 경협을 진행하려해도 대북제재 문제가 있다.
“물론 미국이나 유엔이 대북제재를 당장 풀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제재조항을 보면 ‘인도적 조항은 가능하다’거나 ‘인프라 구축은 괜찮다’거나 등 예외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우선 이러한 조항들을 활용해 경협에 나서면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대북정책이 햇볕정책과 비슷하다고 보나.
“맞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도 결국 햇볕정책과 같은 뿌리에서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아직도 햇볕정책을 북한에 무작정 퍼줘서 남한의 말을 듣게 하려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햇볕정책은 북한만 고려해 나온 정책이 아니다. 중국 일본 등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도 외교적으로 잘 풀어서, 동북아 전체의 평화와 안전, 공동번영을 가져오게 하는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이 햇볕정책의 기본 철학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협 구상과 부친이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비교해 본다면.
“햇볕정책을 펼치던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앞으로는 일본 중국 같은 경쟁자들이 우리가 북방진출하는 데 있어 경쟁자들로 붙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부터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모든 것을 정부 주도로 하려 해서는 안 된다. 민간의 역할도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와 민간 기업 등이 협의해가면서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한 과거에 비해 북한도 많이 변했다. 따라서 과거의 경협보다는 한 차원 높은 경협이 돼야 할 것이다.”
━한 차원 높은 경협은 무엇인가.
“과거에는 대규모 경협이라고 해봤자 개성공단 등 값싼 노동력을 쓰는 정도였다. 하지만 북한 경제도 어느 정도 개방을 통해 발전을 이뤘기 때문에 북한 국민들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또한 북한이 평균적으론 한국보다 기술이나 수준이 떨어지지만, 정권에서 장려하고 있는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우리 못지않은 우수한 인력이 있다. 이들을 잘 활용하면 값싼 노동력만 이용하는 경협이 아닌, 첨단산업의 경협도 이룰 수 있다. 북한에서도 이미 내부적으로 첨단산업에 대한 경협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남북 경협 및 민간교류가 활성화되면 민화협의 역할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계획 중인 사업은 있나.
“아직 단정적으로 뭘 진행하고 있다 말하기 힘들다. 제대로 교류가 이뤄지지 못한 약 10년 사이 북한도 많이 변했다. 우리가 북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다. 북한 측에서 필요로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파악 못했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방북해서 논의를 통해 민간교류 사업을 진행해 보려고 한다.”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방북 논의가 있었다고 들었다.
“방북에 대해 수일 내로 곧 발표할 것이다. 거의 다 합의가 됐다. 초청장이 오기 전까지는 변수가 많아 최종 결정이 났다고 말하기 어렵다. 북한 방문 일정은 사전에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통일전선부 사람들을 만날 것 같다. 나머지는 유동적이다.”
━종전 선언으로 남북한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면, 오히려 통일이 더 어려워지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다.
“난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통일은 먼저 분단을 인정해야 올 수 있다.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평화가 오고, 그래야 나중에 통일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통일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분단 70년 동안 너무 다른 체제하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통일을 할 경우 엄청난 혼란이 올 수 있다. 먼저 북측이 문화적 경제적 수준을 높이고, 남북이 교류하면서 동질성을 회복해 모두가 ‘이만하면 통일 해도 되겠다’는 합의가 이뤄져야 통일은 성사된다. 지금 단계는 통일을 말하기엔 너무 이르다.”
지난 18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 2018 민족화해 심포지움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새로운 도전’에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는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이종현 기자
━향후 북미정상회담을 전망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일반적인 정치인으로 보면 안 된다. 난 그를 거대한 리얼리티쇼를 기획하는 사람이라고 본다. 북한 비핵화 과정도 멋진 쇼로 만들어 전세계에 보여주려는 것 같다. 본인의 성과를 자랑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구조를 만들어서. 이러한 계획은 북한 측에도 알려준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아마 올해 최소한 1번은 멋진 장면을 더 보여줄 것 같다. 김 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하든,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든.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다면, 김 위원장이 70년 가까운 반미투쟁을 끝내고 새 시대로 간다는 메시지를 북한 주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민화협 상임의장으로서, 또한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은 남북교류 활성화 문제에 집중할 생각이다. 일부에서는 북미관계 개선과 비핵화 진행 과정을 보면서 남북관계를 맞춰나가야 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난 거꾸로 남북 교류를 적극 활성화시켜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불가역적 평화체제 구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북 간 평화무드가 깨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