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무대 점점 사라져 스타급들도 가세…비인기 개그맨은 인지도 쌓고 TV 무대 역수입
유튜브 채널 ‘좋아서 하는 채널’ ‘안영미 강유미의 미미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개그우먼 강유미. 사진=좋아서 하는 채널 캡처
TV에서 유명했던 개그맨·개그우먼들을 유튜브 채널에서 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전까지 1인 방송 미디어 가운데 가장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던 아프리카 TV에서 유튜브로 방송 플랫폼 선호도가 바뀌기 시작한 2016년부터 개그맨들의 대대적인 유튜버 전향이 시작됐다.
이 당시는 아프리카 TV의 ‘갑질 논란’으로 소속 BJ들이 유튜브 탈주 사건이 발생한 시기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단순히 동영상 업로드 사이트로만 알려졌던 유튜브가 ‘1인 방송 미디어’로도 활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 BJ들은 물론 개그맨들도 앞다퉈 유튜브로 향했다.
개그맨에서 뷰티 유튜버(주로 메이크업 영상을 올리는 유튜버)로 변신을 시도한 ‘댄서 킴’ 김기수 역시 이 시기 유튜브에 안착했다. 그는 ‘화장하는 남성’의 콘셉트로 뷰티 유튜버 대열에 합세했고, 이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SNS 플랫폼을 바탕으로 활동의 폭을 넓혀 나가기도 했다.
특히 김기수의 경우는 2000년대 초반 KBS 2TV ‘개그콘서트’에서의 ‘댄서 킴’ 콘셉트 이후로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못했던 바 있다. 그런 그가 유튜브를 발판으로 메이크업 전문 예능 프로그램 ‘겟 잇 뷰티’ 등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유튜버로 전향한 비인기 개그맨의 성공적인 재기를 보여준 그의 채널 구독자 수는 현재 11만 8800여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댄서 킴’으로 인지도를 높였던 개그맨 김기수는 2016년 ‘뷰티 유튜버’로 전향해 활동 스펙트럼을 넓혔다. 사진=김기수 인스타그램
강유미는 단독 유튜브 채널인 ‘좋아서 하는 채널’과 안영미와 함께 하는 ‘안영미 강유미의 미미채널’을 운영 중이다. 단독 채널은 구독자 38만 명, 미미 채널의 경우는 12만 명이 구독하고 있다. 개그우먼 이국주도 25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해 다양한 동영상 콘텐츠를 서비스 중이다.
구독자들의 수로만 따진다면 이미 그들에 앞서 안정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유명 BJ나 유튜버에 비해 적은 숫자다. 예컨대 아프리카 TV 유명 BJ 출신 유튜버인 대도서관의 경우는 173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애니메이션 더빙으로 유명세를 탄 유튜버 장삐쭈 역시 구독자가 84만 명에 이른다. 동영상 플랫폼의 세계에서는 개그맨들의 유명세보다 이들 유튜버의 영향력이 더욱 강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오히려 TV에서 그다지 각광받지 못했던 개그맨이 유튜브에서 더 큰 인기를 얻는 경우도 있다. 개그맨 유튜버 중 가장 높은 구독자 수를 보유하고 있는 엔조이 커플의 경우다.
‘코미디 빅 리그’와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로 데뷔한 개그맨 손민수와 개그우먼 임라라가 운영하고 있는 이 채널은 앞선 김준호, 강유미의 구독자 수의 약 2배 이상인 약 65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한 상태다. 실제로 지난 3월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V’에 출연한 한 개그우먼은 “엔조이커플의 임라라 언니가 ‘웃찾사’에 출연할 때는 사람들이 아무도 못 알아 봤다. 그런데 유튜브에서 잘하니까 알아 보더라”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튜브 개그 채널 제작 관계자는 “현재 국내 프로그램 가운데 개그맨들이 고정적으로 출연할 수 있는 무대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그나마 심폐 소생하던 ‘개그콘서트’나 ‘코미디 빅 리그’도 보는 사람들이나 보지 새로 유입되는 시청자들은 잘 없지 않나. 설 무대가 점점 사라져 가는 개그맨들이 유튜브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지적했다.
개그맨 손민수, 개그우먼 임라라의 유튜브 채널 ‘엔조이 커플’. 김준호, 강유미의 구독자 수보다 높은 약 65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사진=엔조이 커플 채널
특히 ‘개그콘서트’의 경우는 2015년부터 서서히 시청률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더니 2016년부터는 시청률 10% 선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던 바 있다. 최장수 프로그램이자 개그맨들의 공중파 TV 무대 ‘마지막 보루’로 취급 받아 온 ‘개그콘서트’의 몰락은 결국 다른 방송사에까지 여파를 미쳤다. 일부 유명 개그맨이 고정 출연하는 몇 개의 예능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방송가에서 개그맨들을 향한 러브 콜이 전무하게 됐다는 것. 실제 개그맨 김준호도 “(대학로 소극장) 공연장처럼 개그맨들이 설 수 있는 방송 무대가 없어져서 힘들다”는 심경을 밝힌 바 있다.
앞선 관계자는 “오히려 요즘은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에서 먼저 인기를 끌고 방송으로 역수입 되는 경우도 있다. 인기 유튜버 ‘장삐쭈’는 개그맨으로 데뷔한 적 없는데도 인기를 바탕으로 SNL 방송에 특별 출연하지 않았나”라며 “유튜브의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해도 개그맨들은 여전히 무대가 그립다. 언젠가 다시 방송 무대에 서는 날을 꿈꾸며 대중들로부터 잊히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