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 지금은 고인이 된 미당 서정주 시인이 세계 일주를 하고 <떠돌며 머물며 무엇을 보려느뇨>라는 기행문집을 낸 적이 있다. 세계 일주라 해서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지구촌을 한 바퀴 도는 그런 일주가 아니라 1년여에 걸쳐 5대양 6대주를 샅샅이 찾아가는 기행이었다. 이 기행문집에서 미당은 나이지리아 라고스공항에서 어처구니없이 돈을 뜯긴 불쾌한 체험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통과여객으로 라고스공항에서 내리자 불법입국이지만 잘 봐줄 테니 20달러만 내라는 공항직원, 좋은 호텔 소개하겠다면서 겨우 500미터를 운행하고 10달러를 뺏어간 택시운전사,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공동화장실에서 악취가 나는 호텔도 아닌 호텔에서는 40달러를 받아 챙기고…. 출국시에는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짐을 조사하겠다면서 덤비고. 그 악몽 같은 기억을 미당은 기행문에서 ‘라고스에선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뜯어먹자판-라고스’라는 소제목으로 복수하고 있다.
재작년인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장하준 교수가 서울에서 강연한 적이 있다. 이 강연 도중 장 교수는 자신이 가르친 학생 중에 가장 똑똑한 학생이 나이지리아 출신이었다고 소개했다. 나이지리아라는 나라가 속된 말로 ‘난장판’이기 때문에 똑똑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제도가 잘 되어 있고 규칙이 잘 지켜지는 나라에서는 개인이 똑똑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가 있지만 제도가 부실하고 법과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나라에서는 똑똑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은 똑똑한데 나라가 엉망인 것은 법과 질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 부 장관을 임명할 때마다 참으로 유능하고 똑똑한 사람들을 잘도 찾아내었다 싶을 정도로 뛰어난 면면들을 만난다. 그러나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게 되면 유능하고 똑똑한 인재의 그늘진 면이 조금씩 드러나게 마련이다. 어쩌면 그렇게 교묘하게 합법적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는지, 어쩌면 그렇게도 시의 적절하게 재테크로 재산을 모았는지, 그리고 탐나는 신랑감이기도 했겠지만 처가는 어쩌면 하나같이 잘사는 부잣집인지… 평생 가야 그런 청문회장에 설 기회조차 없는 시정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로서는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똑똑하고 유능한 인재가 많다는 것은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똑똑한 인재들이 그 좋은 머리를 자신의 입신양명이나 축재를 위해서 쓴다면 그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똑똑하고 유능한 인재가 도덕적 사회적 의무를 우습게 아는 것도 문제지만 거기에다 법과 제도의 틀이 엉성해서 똑똑한 사람만 잘사는 세상은 마침내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국가적 재앙이 되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