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협상의 소문이 나돌자 우리 정부는 처음부터 강하게 부인했다. 청와대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방북을 요청했다는 미국 국방부 관리의 발언이 틀리다고 반박하기까지 했다. 우리 정부가 줄곧 거짓말을 해왔다는 것이 이번에 드러난 것이다.
절박한 사정이 없는데 가볍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나쁘고 현실적으로 어리석다. 그것도 곧 들통이 날 사안에 대해서. 이번에 우리 정부의 높지 않은 신뢰도는 더욱 훼손되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협상을 맡은 사람들이 그 일에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기택 수석 부의장은 원로 정치인이지만 외교에는 지식도 경험도 적다. 김대식 시무처장은 일본어학을 전공한 대학 교수였다. 이 대통령이 신임한다는 점을 빼놓으면, 두 사람은 북한 사람들과의 협상에 필요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셈이다.
반면에 북한은 대남한 사업을 총괄하는 김양건을 파견했고 실무자도 공식 조직에서 협상을 담당해온 사람이다. 지식과 경험이 많은 직업적 협상가들을 보낸 것이다.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은 늘 어렵고 위험하다. 크리스토퍼 힐과 같은 노련한 미국 외교관도 결국 북한 사람들에게 농락당했다. 그런 협상에 이 대통령은 경험 없는 민간인들을 보낸 것이다. 만일 그가 정부 조직의 개입을 꺼렸다면 은퇴한 외교관처럼 경험이 많은 사람들을 골랐을 수도 있었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점은 협상을 몰래 했다는 사실이다. 이번엔 비밀 협상을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 대통령은 일찍이 투명한 대북한 정책을 천명했고 지금까지 그런 정책을 지켜서 좋은 성과를 얻었다. 인도적 지원으로 옥수수 1만 톤과 우유 20톤을 보내겠다는 우리 정부의 제안에 북한이 반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대통령의 정책이 성공했음을 말해준다. 지금 갑자기 그런 정책을 바꿀 이유가 어디 있는가?
게다가 공개 협상은 북한이 계략을 꾸밀 기회를 줄인다. 북한의 정상회담 제안이 핵무기 개발에 대한 국제적 제재를 벗어나려는 노력이므로 협상을 공개적으로 진행시킬 필요는 더욱 크다. 아울러 공개 협상은 우리 시민들의 뜻이 반영되도록 해서 우리 정부의 입지를 강화한다. 좌파 정권들의 비밀 협상과 ‘퍼주기’에 넌더리를 낸 터라, 우리 시민들은 우리 정부의 공개적이고 다부진 대북한 정책을 지지할 것이다.
어리석게 비밀 협상에 끌려 들어갔으므로 우리 정부는 끝내 북한에게 농락당했다. 김양건은 일부러 베이징에서 모습을 드러내어 기자들이 비밀 협상의 존재를 찾아내는 단서를 제공했고 결국 우리 정부는 곤혹스러운 처지로 몰렸다.
공산주의자들에게 협상은 전쟁의 연장이다. 그들은 전쟁에서 얻지 못한 것을 협상에서 얻으려 한다. 그래서 온갖 계략들을 다 쓴다. 특히 합의한 것을 지키려 하지 않고 갖가지 이유들을 대면서 지연시키거나 무력화하려 애쓴다. 그런 술책을 조금이라도 막으려면 협상을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