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고등학교까지 길고 긴 12년이 대학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 평가되는 기막히고도 징그러운 나라가 여기 대한민국이다. 아무리 성품이 좋아도, 아무리 특정 과목에서 창조적이었어도, 아무리 리더십이 있었어도, 일류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존재가 미미해지는 이상한 나라가 여기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은 일류공화국이다. 일류대학 출신이거나, 혹은 일류대학의 꿈이 좌절됐거나, 일류대학을 지향하며 치열한 교육열을 가진 부모 밑에서 일류대학과 일류직장의 꿈을 꾸며 자연스럽게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자의 공화국이다.
자식들은 알고 있다. 자신의 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은 일류대학을 나와 일류직장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자식들이나 없는 자식들이나 모두 일류대학, 일류직장에 들어가는 일이 일류인생의 관문이라 믿게 된 것이다. 자식들은 알고 있다. 자식에게 올인하는 부모의 집착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그 집착과 요구를 참아내는 것이다.
그렇게 성장해서 그런지 우리는 현재를 희생하며 사는 일에 익숙하다. 미래를 사느라 현재를 살지 못하는 것이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살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살고, 승진하기 위해 살고, 강남에 진입하기 위해 산다. 지금 여기 현재를 희생하는 데 익숙한 우리는, 목적 없는 무언가는 늘 허비고 낭비라 생각할 만큼 여유가 없다. 그 결과 우리 아이들의 시간표는 하고 싶지 않은 수단적인 공부들로 꽉 차 있고, 어른들의 시간표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나야 하는 직함들과의 관계망으로 꽉 차 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 인생을 모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신이 ‘학생증이 없거나 돈이 없거나 직함이 없는 나’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우리들도 늘 바빠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빠야 살맛나는 현대인이 제일 두려워하는 건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일을 통해서만 존재감을 느끼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까지 있는 그대로 느끼지 못하고 그의 일과 배경을 통해 그를 본다. 그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의 부모는 그에게 얼마만큼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인지, 그가 내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만 중요하다. 그것은 그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번 목적 없이 천천히 걸어보자. 모자로 자외선을 차단하고 마스크로 바이러스를 차단하고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기 위해 팔 동작을 크게 하고 걷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다이어트란 목적만 남아 태양과 바람을 모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식을 위해서도 말고, 배우자를 위해서도 말고, 자신의 일을 위해서도 말고 자기의 참모습을 그저 보기 위해 기도를 해보자. 그리고 또 혼자 차를 마셔보자. 천천히 음미하면서. 그것이 지금 여기 현재를 회복하여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