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 통치는 1945년 8월 15일 공식적으로 끝났다. 따라서 친일 행위들은 적어도 60여 년 전의 일이다. 이처럼 오랜 세월이 흘렀으니 친일 행위의 현실적 중요성과 친일 행위에 관한 논란은 많이 줄어들었어야 자연스럽다. 사정은 크게 다르니 근년에 오히려 친일 문제가 큰 논란을 불러서 사회의 분열을 키운다. 여러 원인들이 있지만 좌파 세력이 ‘과거’를 재해석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늘리려는 전략을 추구해온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들은 심지어 대법원의 판결조차 뒤집으면서 자신들의 역사 해석을 최종적인 것으로 만들려 한다.
이번에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이 나오면서 논란은 부쩍 커졌다. 당장 문제가 된 것은 그 책이 지나치게 편향되었다는 점이다. 우파 인사들은 조그만 흠집도 확대 해석해서 친일파로 몰고 좌파 인사들과 북한 정권에 봉사한 사람들은 대부분 외면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평가는 이런 편향을 상징한다. 실제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일부 위원들은 편향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보고서’가 발간되자 이내 그것을 들고서 노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았다.
이런 편향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성취를 깎아 내리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그러나 어떤 뜻에서 더욱 문제적인 것은 그들이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최종적 심판들로 행세한다는 점이다. 그들이 친일파의 기준으로 내놓은 것들은 대부분 지엽적이고 자의적이어서 친일 행위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역사적 평가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흔히 부적절하다.
친일파와 친일 행위는 정의하기가 무척 어려운 개념들이다. 무엇보다도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다스렸던 시기에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법적으로 일본제국의 국민들이었다는 사실이 있다. 일본의 조선에 대한 지배의 정당성을 부인하고 식민 통치의 권위에 용감하게 저항한 사람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규칙을 증명하는 예외들’이었다.
친일 행위나 친일파는 조선이 독립 국가였던 시기에 만들어졌고 뜻을 지닐 수 있었던 개념들이다. 조선이 공식적으로 일본의 한 부분이 된 뒤 한반도에서 살았던 조선인들에 관한 한 그 말들은 뜻을 잃었다. 이미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일본 제국의 국민들이 된 조선인들에게 그런 말들을 쓰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이처럼 정의하기 힘든 개념들을 실제 상황에 적용해서 친일파 명단을 만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거칠고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친일파의 판별도 어렵고 친일파로 판정된 사람들을 처벌할 법적, 도덕적 근거도 약하고, 그런 작업의 효용도 뚜렷하지 않다. 당연히 우리는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겸허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식민지의 경험은 한 민족의 넋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그림자를 걷어내는 일은 정말로 어렵고 더디다. 지금 친일파를 청산하겠다고 나선 이들의 오만과 편견은 그 그림자를 걷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금씩 나아지는 역사의 상처를 덧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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