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소망이 크면 실망도 크다지 않는가. 한 해가 저무는 세모(歲暮)가 되면 뭔가 허전하고 축축한 감상에 젖어드는 것도 새해 아침에 품었던 소망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데 대한 회한 때문일 것이다. “아, 또 한 해가 이렇게 흘러갔구나”, “새해에는 뭔가 좀 달라지려나” 저마다 크기와 깊이는 달라도 회한과 기대가 엇갈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막상 태고로부터 흘러내려온 기나긴 세월에 매듭마저 없었다면 세상사가 얼마나 지루하고 따분했겠는가.
사람들은 누구나 오늘과는 다른 내일, 올해와는 다른 내년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대체로 실망으로 돌아오곤 한다. 홍영철 시인이 쓴 ‘그 많던 내일은 다 어디 갔을까?’는 내일에 대한 꿈이 무너진 것에 대한 탄식이다.
“그때도 그랬다/그때도 내일을 기다렸다/내일이 오면 오늘보다 조금은 다른/무엇이 다가오지 않을까/그렇게 그때도 기다렸다/그러나 내일은 언제나 만나지지 않았다/내일은 언제나 오늘이 되었고/오늘은 언제나/인내처럼 쓰고 상처처럼 아렸다/…/내일은 끝없이 내일이고/오늘은 텅 빈 꿈처럼 끔찍이도 허전하다/다 어디 갔을까/그 많던 내일은?”
홍영철 시인이 이 시를 발표했던 1998년 여름은 외환위기로 나라경제가 휘청거리던 때였다. “새해는 작년과는 다르겠지”, “정권이 바뀌었으니 뭔가 달라지겠지” 등등의 기대가 무너지자 시인은 ‘내일은 끝없이 내일이고 오늘은 텅 빈 꿈’이 되는 안타까움을 시로 표현했을 것이다.
새해 서기 2010년은 21세기의 첫 10년을 마감하고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해다. 열 개의 손가락으로 셈을 하는 데서 비롯됐다는 십진법(十進法)을 섬겨온 때문인지 우리는 마지막 숫자가 0(영)으로 매듭짓는 해가 되면 그 해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새로운 각오와 의지를 다지곤 했다. 경술국치(庚戌國恥) 백년이요, 육이오 60주년, 4·19의거 50주년, 5·18 광주항쟁 30주년이라며 2010년 새해에 각별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0(영)으로 끊어지는 해는 다른 해와는 달리 더 큰 매듭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처럼 느껴지는 것은 내일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우리가 걸어 온 길을 긴 안목으로 돌이켜 보면 우리의 기대와 소망이 결코 헛된 꿈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전쟁의 잿더미를 딛고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이룩한 성취는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굳이 ‘한강의 기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토록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해 낸 것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성취였다. 긴 안목으로 보면 야당의원들의 국회농성이나 노사갈등, 세종시를 둘러 싼 국론분열 등은 한 번은 앓고 넘어야 할 성장통(成長痛)인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새해엔 뭔가 좀 달라지려나.
이광훈 언론인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