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위를 서서히 이동한 대륙들이 서로 충돌해서 생긴 것이 산맥이다. 판 이동이 없었다면 산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인도판이 북상하면서 유라시아판과 충돌해서 생긴 것이 히말라야다. 아프리카판과 유라시아판 그리고 이베리아판이 충돌해서 생긴 것이 알프스 산맥이다. 북아메리카판과 태평양판이 충돌해서 생긴 것이 그랜드캐니언이다.
산은 그렇게 충돌의 흔적이다. 충돌로 생겼으면서도 쌈꾼 같지 않은 것이 진짜 묵직한 존재 아닌가. 그것이 세월을 간직한 존재의 힘일 것이다. 확실히 산은 존재감이 있다. 말이 없어도 묵직하다. 산바람을 좋아하고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인간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아느냐고 되묻는다.
좋아하는 존재를 닮는 법이어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대한 산을 타는 그 순간은 침묵이 익숙한 현자 같다. 이상하다. 인간이 미미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인간이 미미하지 않은 것이. 인간보다 오래된 것들을 존중하며 그것에 기대어 있는 존재는 그 오래된 것들이 그들의 전생이고 조상임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정초부터 터진 아이티의 지진은 갑작스런 뉴스였고 그만큼 무서운 뉴스였다. 어쩌면 그렇게 인간을, 인간의 가치를, 인간의 삶의 양식을 배려치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한순간에 인간 문명을, 인간의 윤리를 쓸고 가는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무기력한가. 아이티와 가까운 중앙아메리카의 마야문명과, 고대이집트 문명은 가뭄으로 멸망했고, 크레타 문명의 멸망은 지진해일이 그 원인이었다. 인간의 시간표를 고려하지 않는 자연이고 보면 언제 어디서 또 터질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고 자식을 잃고 형제자매를 잃고 평생을 불안 속에 갇혀 살게 될지도 모를 그들이 남 같지가 않다. 괴롭다 엄살 떨 수도 없는 그들의 지옥 같은 현재가 그들 미래의 청사진이라 생각하면 괜히 맥이 풀렸다. 어쩔 것인가. 그래도 살아야지, 그들이 살게 도와야지! 어지러운 마음으로 뉴스를 보고 있는데 매몰된 성당의 폐허 속에서 일주일 만에 구조된 할머니가 한마디 말로 지옥 속에서 캐낸 천국의 보물을 보여준다. “신을 만난 시간이었어요.”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던 폐허의 지하에서 그녀는 그녀의 신을 불렀다. 시간이 지나며 함께 쓰러져 있던 사람들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몸은 싸늘해졌고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 공포의 상황에서 할머니는 당황하지 않고 그녀의 신을 부른 것이다. 살고 싶다는 욕구도 잊고 죽어도 좋다는 생각도 잊고 신만을 부른 것인데, 바로 그 과정이 운명이 되어 마침내 빛을 본 것이었다. 그 할머니를 구조한 구조대원의 말도 뭉클했다. “신의 손을 잡은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 손이 신의 손이었을 거라 믿는다.
삼매에 들어 신이 된 할머니가 가르친다. 지옥 속에서도 천국의 못이 있음을. 그 할머니의 손을 잡은 구조대원이 가르친다. 지옥 속에서 만난 천국이 더욱 강렬하다고.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