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강풀 만화 <바보>를 보셨습니까? 친구가 죄를 뒤집어 씌워도 억울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억울함을 당하는 바보, 왕따를 하면 왕따당하는 바보,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시당해도 무심히 기다려주는 바보, 정의도 모르고 희망도 모르고 ‘사랑’도 모르면서 사랑하는 바보, 그 바보가 승룡이였습니다. 아무런 바람도 없이 상대를 배려하는 승룡이는 초식동물처럼 순합니다. 운명을 탓하지도 않고 운명에 덧칠하지도 않고 바보의 운명을 순하게 받아들이는 거지요.
똑똑한 사람은 종종 제 꾀에 제가 넘어갑니다. 남의 얘기 같으십니까? 혹 자기 꾀에 넘어가 함정이 빠져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저는 종종 있습니다. 그것이 함정에 빠진 다른 사람을 보고 고소하다고 박수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 함정이라는 것은 나를 돌아보도록 권하는 신의 구명보트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바보처럼 살라고 말이지요.
바보가 유치하다구요? 유치해지지 않으면 내공이 생기지 않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똑똑하고 똑부러지기만 한 사람들이 의외로 얼마나 약하고 자신감이 없는지. 그러니 머리로 아는 지식이 인간을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하는 겁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를 변화시킨 사람들도 똑똑한 사람들은 아니지 않나요? 인간은 똑똑한 사람 앞에서는 긴장합니다. 바람 앞에 몸을 움츠리고 외투를 여미는 꼴이지요. 당연히 많이 배웠다, 대단하다는 등의 진부한 아부의 말을 늘어놓을 수는 있겠으나 그런 말에 넘어가면 그야말로 제 꾀에 제가 넘어가고도 넘어간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인 겁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건 바로 바보입니다. 그는 1등만 기억하는 이 더러운 세상을 더럽다고도 하지 않고 1등을 하려고 아등바등하지도 않습니다. 그에게는 남들이 다 꾸는 질긴 성공의 꿈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영악한 사람들의 영악한 경쟁 시스템이 그를 덮칠 수 없습니다. 그들이 1등이라는 보물찾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 자신이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바보는 꾀를 부리지 않습니다. 머리를 굴리지 않기 때문에 늘 작은 손해를 보지요. 소인들은 작은 손해 앞에서 아등바등하는 사람들이지만 바보는 툭툭 털고 일어납니다. 그 힘으로 뚝심이 생기는 거지요. 어차피 인생은 소유의 게임이 아니라 체험의 게임입니다. 백만장자라고 저승길에 많이 싸가지고 가서 저승에다가 100평짜리 빌라를 마련할 수 있는 건 아닐 테니까요. 자기가 가진 것으로 배우지 못하고 그저 지고 있으면 그것은 그저 짐일 뿐 힘이 되지 못합니다. 인생의 힘은 소유가 아니라 자유입니다.
우리 곁을 떠난 바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려옵니다. 훈훈하게 살다갔던 바보들이 보고 싶습니다. 그 바보가 우리 안에도 있겠지요?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