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먼저 ‘찜’하면 당선은 떼어논 당상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를 보며 환호하고 있다. 사진 박은숙 기자
정춘숙 의원은 차기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지난 3월 경기도 용인 수지구(용인병)로 이사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원은 해당 지역에 별다른 연고가 없지만 이제부터 기반을 닦아 다음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계획이다. 용인병은 현재 한선교 자유한국당(한국당) 의원 지역구다.
일부 비례대표 의원들은 민주당의 험지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제윤경 의원은 험지 중 험지인 경남 사천·남해·하동 지역위원장을 맡았다. 여상규 한국당 의원 지역구다. 제 의원은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들 중 가장 먼저 지역위원장을 맡았다. 제 의원 측 관계자는 “제 의원이 경남 하동 출신이라 지역위원장을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우리는 당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취지에서 험지 지역위원장을 맡은 것이지 총선 출마만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라며 “물론 총선 출마 가능성이 높지만 확실하게 결정된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수혁 의원도 제 의원과 같은 시기에 정읍·고창 지역위원장을 맡게 됐다. 이 의원은 지난해 6월 문미옥 전 의원이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으로 임명되면서 비례대표직을 승계했다. 비례대표로 의정활동을 시작한 지 반 년 만에 지역구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심기준 의원은 지역구가 없는 비례대표지만 이례적으로 강원도당위원장을 맡고 있다. 심 의원은 김기선 한국당 의원 지역구인 강원 원주갑 출마를 준비 중이다.
이외에도 경북 의성 출신인 김현권 의원은 대구나 경북 지역 출마를 고심 중이고, 박경미 의원은 현재 주소지인 서울 서초구 출마를 권유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미혁, 송옥주 의원도 차기 총선 출마 결심은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두 의원은 현재 어느 지역구에서 출마할지를 고심 중이다.
권미혁 의원실 관계자는 “수도권 지역구 중 한 곳에서 출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옥주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의원님은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지만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출마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이왕이면 한국당이나 다른 정당 국회의원이 있는 지역구에 출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은 총 13명인데 이 중 차기 총선에 불출마할 것이라고 밝힌 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만 아직 출마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는 의원은 있었다. 최운열, 이용득 의원실 관계자는 “아직 출마를 할지 안할지 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성수 의원실 관계자도 “현재로선 정해진 것이 없다. 총선 불출마한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당분간 지역위원장 신청은 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희 의원 측도 “비례대표 의정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지역구를 맡지 않겠다”고 했다. 이철희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님이 불출마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는데 아직 정해진 것이 없으니 오보다. 의원님이 비례대표가 지역구를 맡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비례대표제의 본래 취지를 훼손하고 의정활동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라며 “차기 총선에 확실하게 불출마한다고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임기 말까지는 비례대표로서의 의정활동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이철희 의원 측의 주장처럼 비례대표 의원이 지역구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직능전문성을 발휘하라는 취지로 선발된 비례대표 의원들이 지역구 관리에만 관심을 쏟으면서 본연의 역할에 소홀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의 활동에 별 차이가 없으니 아예 비례대표제를 폐지시켜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도 나온다. 일부 비례대표 의원들은 자신의 직능 전문성을 살리는 활동을 하기보단 지역구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예산을 따내는 데 주력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제윤경 의원실 관계자는 “국회에서 거리가 먼 경남 사천·남해·하동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지만 의정활동에 큰 지장은 없다”면서 “의원님의 법안 발의 내역을 보면 지역위원장을 맡은 이후에도 성실하게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지역구 출마는 민주당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은 아니었다. 지난 19대 국회의 경우 여야 비례대표 국회의원 52명 중 49명이 지역구 출마를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민주당을 제외한 야당 비례대표 의원들의 지역구 활동은 뜸한 상황이다.
한 한국당 비례대표 의원 보좌진은 “지방선거 참패 이후 기존 지역구 국회의원들도 연이어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는데 비례대표가 총선 출마하겠다고 하면 굉장한 비판을 받을 것”이라며 “우리 의원님도 차기 총선에 출마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지금은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보좌진은 “앞으로 야당의 상황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출마해봐야 당선될 가능성이 낮으니) 불출마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야당 비례대표 의원들도 상황이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
청와대 보좌진도 마음은 ‘콩밭’에… 민주당이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문재인 정부의 공직을 맡은 인사들도 벌써 차기 총선을 준비하느라 바쁜 모습이다. 진성준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은 최근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내정되면서 사의를 표명했다.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진 비서관은 21대 총선에서 서울 강서을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도 지역구 관리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영민 중국 대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방중했던 기간에 국내에 머물면서 지역구 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비판을 받았다. 충북 청주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노 대사는 지난 6월 19일 충북 청주의 한 식당에서 열린 민주당 간담회에 참석해 지방선거 당선자들을 격려했다. 민주당은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지역위원장 자리를 내려놓은 인사들에 대해 직무대행 체제를 계속 인정해주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보좌진들은 공무원이기 때문에 당적을 가질 수 없고, 당적을 가지지 못하면 지역위원장에 선출될 수 없다. 그러나 민주당에서는 청와대 보좌진들에 대해 자기 측 인사를 직무대행으로 내세워 지역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해왔다. 일각에선 특혜라는 반발도 있었으나 당 지도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이로 인해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전북 익산을)을 비롯해 백원우 민정비서관(경기 시흥갑), 나소열 자치분권비서관(충남 보령·서천), 정태호 정책기획비서관(서울 관악을), 조한기 의전비서관(충남 서산·태안) 등이 사실상 지역위원장 대우를 받으며 차기 총선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