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문 속에 숨겨 운반 무려 수십억대…환승구역은 외국 간주 관세법 적용 어려워
대한민국이 금괴 밀수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내 금 시세가 국제 시세보다 비싸다는 점을 이용해 시세 차익을 노리는 금 밀수입·밀수출이 최근 몇 년 사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금괴밀수 적발 건수는 2012년 14건에서 2017년 8월 기준 101건으로 7배 이상 증가했다. 금괴 밀수입·밀수출이 급증하며 최근 일본에 다녀온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본 세관심사가 눈에 띄게 강화되었다는 푸념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내 관세법 상 공항 환승구역은 외국으로 간주되어 금괴 밀수가 적발되더라도 제대로 된 처벌이 쉽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금괴 밀수입이 조직적인 형태로 성행하고 있다. 사진은 적발된 금괴. 사진=관세청
A 씨와 B 씨가 금괴 밀수를 위해 선택한 방법은 충격적이었다. 세관의 금속 탐지기를 피하려고 항문 속에 금괴를 숨긴 것. 세관에 따르면 이들은 소형금괴를 둥근 깍두기 형태(3×3×2cm)로 특수 제작하여 매번 한 사람당 5~6개를 신체에 숨겨 세관검사를 회피했다. 항문에 장시간 금괴를 은닉할 수 없어서 주로 1~2시간의 운반시간이 소요되는 중국 옌타이, 일본 도쿄 등이 밀수 장소로 선택됐다. 지난달에도 시가 6억 4000여만 원 상당의 소형금괴 70개를 몸속에 숨겨 중국에서 국내로 들여오고 일본에 밀수출까지 한 40대 여성이 법원으로부터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7억 9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관세청 관계자는 “환율·시세 차익에 따라 한국으로 들여오기도 하고 일본으로 밀수출하기도 한다”며 “경제 형편이 좋지 않아 한 회당 30만~40만 원의 운반비를 벌기 위해 금괴를 밀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더욱 큰 문제는 최근의 금괴 밀수 범죄가 마약 밀수와 마찬가지로 조직적인 형태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관세청의 한 관계자는 “(신체에 금괴를 숨겨 밀수한 범죄로) 적발된 금괴 밀수 조직이 여러 개다. 2년 가까이 수사를 하면서 운반을 한 사람만 100명 넘게 조사했고 아직도 수십 명을 추가로 조사해야 한다”며 “조사를 마친 밀수 관련자들은 대부분 검찰로 송치되어 기소된 것으로 알고 있다. 밀수를 사주한 총책을 포함해 현재 법정 구속된 사람은 10여 명”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금괴 밀수가 지속적·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범죄임에도 이에 대한 법적 처벌 규정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국내 관세법상 공항 환승구역이 외국으로 간주돼 관세법 적용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중국-국내 공항-일본으로 이어지는 흔한 밀수입·밀수출 경로의 경우 인천공항 환승구역을 벗어나지 않았으므로 법적으로는 국내에 입국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앞의 관세청 관계자는 “금괴 밀수 총책은 사주한 금괴밀수 건의 공범으로 처리돼 운반책보다 무거운 처벌을 받는 건 사실이지만 현행법상으로는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정도를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4월 말 밀수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괴가 인천공항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사건도 관세법상 처벌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가 3억 5000만 원 상당의 금괴 7kg이 발견된 장소는 제1 여객터미널 출국장 화장실로 관세법이 적용되지 않는 면세구역이다. 다른 관세청 관계자는 “관세법상 환승 구역은 외국으로 보면 된다. 현재로서는 계속 수사를 진행 중이며 이와 관련해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며 “최근 부산지검이 불법 금괴 중계무역 행위에 대해 최초로 관세법을 적용해 관련자들을 구속기소했는데 해당 사건의 결과가 앞으로의 비슷한 사건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