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 6월 14일 캠프 해단식을 마친 뒤 침울한 표정으로 나오고 있다. 최준필 기자
안 전 후보는 6·13 지방선거에서 3위에 그친 후 정계 은퇴 압박을 받고 있었다. 바른미래당 워크숍에 초청된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안철수의 사심으로부터 모든 비극이 출발했다”면서 “자성의 시간을 3년 정도 가진 다음에 다시 하더라도 지금은 떠나시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안 전 후보의 정치 멘토였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조차도 “더 이상 여기(정치)에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지 말고 본업으로 돌아가는 게 더 사회에 기여하는 길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 전 후보가 이대로 정치를 포기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도 “과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더 (많이 낙선을) 하지 않았나”라며 안 전 후보의 정계은퇴론은 과도하다고 선을 그었다. 당내 일각에서는 정치적 공백이 길어질 경우 재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안 전 후보가 오는 8월 19일로 예정되어 있는 전당대회에 출마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한 바른미래당 의원실 보좌진은 “안 전 후보가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정계를 은퇴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나. 안 전 후보는 이번 선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당의 요청에 의해 희생을 한 것”이라면서 “당을 위해 험로도 마다하지 않은 사람을 졌다는 이유로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납득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바른미래당 의원실의 한 보좌진은 “정계 복귀를 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자동차로 비교를 하자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보닛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차가 멈춘 거다. 시동이 걸린다고 무작정 다시 출발하면 정말 큰 사고가 난다. 지금은 무조건 쉬었다 가야 한다. 어디가 고장 났는지 살펴보고 교체할 부품은 교체해야 한다. 그 정도의 혁신을 하지 않고 다시 정계에 복귀하면 다음에는 3등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안 전 후보 측근이었던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안 전 후보가 언제, 어떻게 복귀해야 한다고 딱 잘라 말은 못하겠다. 확실한 것은 국민이 원하든, 당이 원하든 주변에서 복귀 요구가 있을 때 복귀를 해야지 자신의 정치적 스케줄에 맞춰 복귀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실장은 “안 전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계속 스탠스가 꼬였다. 평정심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복귀해도 어렵다고 본다”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지역적 지지기반이나 지지 세력이 명확하게 있었기 때문에 정계은퇴를 선언했다가도 화려하게 복귀할 수 있었지만 안 전 후보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치 평론가인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도 복귀 시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변화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안 전 후보가 새정치를 내세우며 정치권에 들어왔지만 지금까지 새정치라고 할 만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거의 없다. 변화 없이는 언제 복귀를 하든 국민들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 평당원 모임인 정치미래연합 조강호 부회장은 “지금은 한가롭게 안 전 후보 개인의 정계 복귀 여부나 따져볼 상황이 아니다. 우리 당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기업으로 치면 부도가 났다. 출마했던 후보들 상당수가 선거비 보전도 받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조 부회장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조치 없이는 당도 안 전 후보도 부활하기 어렵다”면서 “일단 안 전 후보 측근들부터 전부 물갈이해야 한다. 선거 막판까지도 구글 트렌드 들먹이며 1등 할 거라고 하지 않았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거다. 주변에 정무적인 감각이 있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이라며 “공약이나 의제설정에서도 완전히 실패했다. 안 전 후보에게 제대로 조언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부회장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합당 과정에서는 민주적인 절차가 지켜지지 않아 실망한 당원들이 떠나갔고, 지방선거 과정에서는 기존 정당들보다 더 추한 자기 사람 심기 시도로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줬다. 많은 당원들이 이번 지방선거 참패의 가장 큰 책임은 안 전 후보에게 있다고 한다. 안 전 후보가 단일화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기초의원 20% 정도는 이길 수 있는 선거에서도 졌다”고 주장했다.
조 부회장은 “저희 단체는 1만 3000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는 바른미래당 최대 평당원 조직이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토론회 등에서 나온 당원들의 생각”이라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도 굉장히 분노하고 있다. ‘진짜 나왔으면 좋겠다. (전당대회에서) 제대로 심판을 해주겠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조 부회장은 “안 전 후보가 우리 당의 큰 자산이라는 것은 변함없다. 안 전 후보가 더 잘되라고 하는 이야기”라며 “안 전 후보가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대선주자가 되면서 바닥정치를 잘 모른다. 강력한 혁신을 하지 않으면 힘들다”고 말했다.
안 전 후보의 미국행을 비판해 화제가 됐던 장진영 전 바른미래당 동작구청장 후보는 “안 전 후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시간”이라고 말했다.
장 전 후보는 “충분히 시간을 갖고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면서 “가장 큰 문제는 안 전 후보의 측근들이라고 생각한다. 안 전 후보를 제대로 돕지 못하는 분들을 교체해야 한다. 주변에서 측근들을 교체하라고 아무리 지적해도 고치지 않는 안 전 후보도 문제다. 고집만 부려서는 큰 정치인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김도식 안 전 후보 비서실장은 “전당대회 출마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안 전 후보가 출마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 비서실장은 “안 전 후보가 향후 정치에 복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해진 것이 없다. 당직자들 오찬자리에서 안 전 후보가 한 말에 대해 많은 언론들이 정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하셨던데 과도한 해석이다. 앞으로 당이 구조조정을 하게 돼 당을 떠나시는 분들이 많아 그런 분들을 위로하기 위해 한 말이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한 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