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지난달 27일 대통령이 규제혁신 점검회의를 3시간 전에 전격 취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가 준비한 내용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회의 하루 전 관계부처들은 드론, 자율주행차, 인터넷 뱅크, 스마트 공장, 스마트 농장 등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규제혁신 방안을 논의하고 대통령에 보고할 내용을 정리했다. 그러나 이튿날 이낙연 총리가 내용이 미흡하다고 판단하여 회의연기를 건의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답답하다는 심경을 토로하며 받아들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개혁의 성과를 반드시 만들어 보고해달라”고 밝히고 또 “속도가 뒷받침이 되지 않는 규제혁신은 구호에 불과하다. 우선 허용하고 사후에 규제하는 네거티브 방식을 추진하는 것에도 더욱 속도를 내달라”라고 말했다. 사실상 혁신성장을 위해 필요한 규제혁파를 요구한 것이다.
혁신성장은 산업구조를 새로 바꿔 경제성장을 고도화하는 정책을 말한다. 혁신성장의 주요개념은 창조적 파괴다. 과거의 부실한 산업구조를 과감하게 파괴하고 새로운 산업구조를 만들어 경제도약을 꾀하는 전략이 바로 혁신성장이다. 한편 혁신성장에서 핵심역할을 하는 주체가 기업이다. 정부가 규제를 개혁하여 기업활동을 자유롭게 하면 기업들이 창의성을 발휘하여 산업발전의 혁신을 일으킨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경제살리기의 양축으로 정하고 갖가지 정책을 펴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혁신성장은 소득주도성장의 선결조건이라는 것이다. 최근 우리 경제는 성장기반이 무너지는 구조적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혁신성장 정책을 펴 새로운 산업구조를 갖추지 않으면 소득주도성장은 모래밭에 물 붓기 식으로 예산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난 1년 동안 정부는 혁신성장보다 소득주도성장에 치중했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화, 근로시간 단축 등 과감한 정책을 펴 근로자 중심의 경제성장에 집중했다. 그러나 영세기업 부도, 저소득층 실업증가, 빈부격차 심화 등 부작용이 크다. 최근 대통령이 예정된 규제혁신 점검회의까지 취소하며 혁신성장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은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바르게 잡는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면 정부의 혁신성장은 성공할 것인가? 기대보다 의문이 크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정부의 정체성과 방향을 흔들고 싶어하는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 해석한다”며 지난 1년 동안 나타난 정부정책의 부작용을 부인하고 오히려 소득주도성장 추진의 가속화를 시사했다. 소득주도성장이 성공하여 경제가 살아나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정책이 방향을 바꾸지 못해 실패로 돌아갈 경우 경제는 회복이 어려운 함정에 빠질 수 있다.
혁신성장은 정부예산을 투입하는 소득주도성장에 비해 추진이 어렵다. 부실산업 정리, 신산업 발굴, 창업과 투자 활성화, 연구개발 투자확대, 직업훈련 강화 등 경제구조 개조 차원의 개혁이 필요하다. 또 혁신성장의 효과는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더구나 이해집단의 반발이 커 실패위험이 높다. 그렇다고 혁신성장을 포기할 수 없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기업들이 집단적으로 늘고 있어 사실상 산업의 와해상태다. 더구나 인구노령화와 가계부채증가로 소비침체가 최악의 상황이다. 경제의 생명력을 되찾는 차원에서 혁신성장을 우선 추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리하여 고용창출, 소득증가, 소비능력을 회복한 다음 소득주도성장을 펴야 경제가 올바르게 살아난다. 대통령의 혁신성장 요구가 결코 없던 일로 끝나면 안 된다.
이필상 서울대 초빙교수, 전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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