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영권’으로 거듭난 축구국가대표 수비수 김영권 가족의 월드컵 비스토리
김영권의 2018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결승골 장면. 사진=대한축구협회
[일요신문] 2018 러시아 월드컵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16강 토너먼트에 초대받지 못했지만 전 대회 우승팀 독일을 상대로 승리하는 투혼을 보였다. 이는 대회 막바지인 현재까지도 진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대회를 통해 대표팀 주축 수비수 김영권은 극적인 반전을 경험했다. 그는 대표팀 내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던 선수’에서 ‘찬사를 받는 선수’로 거듭났다. 그는 러시아에서 귀국 이후 언론 인터뷰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본인 외에 가족들도 주변의 축하 인사를 끊임없이 받고 있다. ‘일요신문’은 국가대표 수비수 김영권을 키워낸 아버지 김성태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 남다르게 준비한 월드컵
김성태 씨의 휴대전화는 여전히 ‘뜨겁다’. 국가대표 아들이 세계 축구 최대 축제인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했고, 세계 최고 독일을 상대로 골까지 넣었다.
“축하 인사를 말도 못하게 많이 받았다. 골 넣는 순간부터 전화가 엄청 왔다. 프로축구 선수이자 국가대표 선수가 팬이 없고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너무나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김영권의 이 같은 반전에는 남다른 준비가 있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은 그에게 시련이었다. 절치부심한 그는 누구보다 월드컵을 치열하게 준비했다. 이와 관련 아버지 김 씨는 “브라질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안좋은 결과를 가지고 오면서 영권이도 팬들에게 많이 혼났다. 이후로 영권이는 월드컵에서 꼭 한 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면서 “개인운동을 위해 트레이너를 따로 고용해서 중국에서 같이 지냈다. 원정경기 일정에도 트레이너와 함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전에 트레이너와 개인 운동을 하고 오후에는 팀 훈련에 참가하는 식이다”라고 설명했다.
트레이너 고용 비용 등은 전부 김영권이 스스로 부담했다. 그는 자신의 참가가 확정되지도 않은 월드컵을 대비해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간절히 준비했다. 오랜 시간 대표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구자철 등도 이 같은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권은 아버지에게 월드컵에 앞서 “죽기살기로 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김성태 씨 제공
이번 대회에 임하는 마음가짐도 달랐다. 구자철, 기성용, 손흥민 등 김영권과 함께 2014 브라질 월드컵을 경험했던 선수들은 한 입으로 “전 대회 결과를 만회하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었다. 이는 김영권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김 씨는 “이번 대회를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간다고 하더라. 이번에도 결과가 안좋으면 정말 다시는 대표팀에 뽑히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더라. ‘죽기 살기로 해보겠다’는 말도 했었다”고 전했다.
김영권은 월드컵을 앞두고 대한축구협회에서 진행한 프로필 사진 촬영에서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必生則死)’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욕받이 수비수의 설움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까지 김영권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티가 많은 수비수 중 한 명이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됐고, 엔트리에서 교체해야 할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혔다. 김영권 관련 보도에는 악의적 댓글이 따라 붙었다. 그런 아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아버지 김 씨는 “본인이 가장 힘들겠지만 가족들도 스트레스가 많았다. 영권이 엄마한테도 내가 인터넷 같은 거 보지 말라고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후로 기자들이 연락을 해와도 대부분 답을 안했다. 지역 언론에서는 집 앞까지 찾아오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김영권은 한때 ‘중국화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대표팀 주축 선수들이 대거 중국 리그로 이적하며 기량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씨는 “중국 소속으로 뛰는 게 장단점이 있겠지만 억울한 부분도 있다”면서 “중국 리그지만 거기서 뛰는 공격수들은 몸값이 수백억이 되는 외국인 선수들이 많다. 그들을 상대하면서 영권이가 연구도 많이 하고 배운 것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신도 밝혔다. 그는 “물론 기성용, 손흥민처럼 좋은 리그, 좋은 팀에서 뛰면 더 좋겠지만 선수는 뛸 수 있어야 한다. 한때 잉글랜드 큰 팀에서 관심 있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선수는 경기를 뛸 수 있는 팀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영권은 에버튼, 첼시 등 잉글랜드 팀과 연결된 바 있다.
김영권에 대한 집중 포화는 ‘실언 논란’이 절정이었다. 지난해 8월 6만 관중이 몰린 경기가 끝나고 김영권은 ‘관중 소리가 커서 소통하기가 힘들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당시 주장이던 김영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폭발하는 계기가 됐다. 아버지 김 씨는 “팬들의 분노를 이해한다.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다”라면서 “그 이후로 영권이에게 항상 조심해서 말을 하라고 타일렀다”고 전했다.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한 원동력으로 김영권은 여러 인터뷰에서 ‘가족의 힘’을 언급했다. 아버지 김 씨는 “손녀 하나, 손자 하나인데 아이들이 너무 예쁘다. 힘이 날 수밖에 없다. 내가 며느리도 잘 얻었다. 착하고 영권이한테도 잘한다”며 웃었다. 그의 모바일 메신저 프로필 사진 34장은 전부 손녀·손자 사진으로 도배돼 있다.
#모두가 함께 키운 아들
맹활약이 매 경기 이어지며 김영권의 축구 인생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기술적인 몸놀림만큼이나 부드러운 길을 걸어온 듯한 그는 성장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축구를 그만둘 위기에 처했을 땐 지도자들의 도움으로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다.
아버지 김 씨는 “내가 아들에게 해주지 못하는 부분을 좋은 지도자들이 채워주셨다”면서 “그분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김영권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일을 마치고 인근 운동장에서 함께 공을 차며 놀아줬다. 그러다 그 학교에 축구부가 생겼고, 아버지와 공을 차던 김영권을 눈여겨 본 학교 관계자는 입단을 제안했다. 김 씨는 “그때까진 선수 시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초등학교까지만 시키려고 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영권이가 그렇게 잘하는 선수도 아니었다. 그런데 중간에 몇 번을 그만두라고 얘기해도 죽어도 계속 하겠다고 하더라”라고 회상했다. 이후 알려진 바대로 김 씨의 사업이 어려워지고 보증을 선 것이 문제가 돼 김영권이 축구를 하기 어려워졌을 땐 지도자들이 만류했다.
“지도자들이 ‘붙잡아 놓고 계속 시키겠다’고 했다. 이후 사업이 더 힘들어져서 전주에서 부천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영권이도 따라서 전학을 시키려고 했다. 강원길 전주공고 감독이 영권이를 잡았다. 그 분이 고생을 많이 했다.“
강 감독은 본인의 주머니를 털어 용품을 사주고 휴가 때는 집에 버스를 태워 보내주기도 했다. 학교 동문 기금으로 훈련비용도 댔다. ‘이유 없는 후원’은 아니었다. 김영권은 감독이 퇴근한 늦은 시간에도 숙소에서 나와 개인 훈련을 이어갔다. 집에다 용돈 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해 동기생 김호남(현 상주 상무 소속)과 공사장에서 일을 해서 돈을 벌기도 했다.
고교 졸업 이후 진학한 전주대에서도 행운이 이어졌다. 정진혁 전주대 감독은 김영권의 입학 등록금을 내줬다. 정 감독은 당시 풋살 대표팀 감독도 겸했다. 풋살 활동을 제의받은 김영권은 20골 넘게 득점하며 전국대회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김 씨는 “그때 영권이가 정 감독 덕분에 많이 늘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2학년을 마치고 일본 FC 도쿄에 입단했고, 입단 계약금 중 1억 원을 전주대에 기부했다. 학교는 그에게 대학원 과정까지 장학금을 약속하며 보답했다.
‘서울강서 YGFC U18’ 선수단. 사진=김성태 씨 제공
현재 YGFC는 강서구 일대 운동장을 옮겨 다니며 훈련을 하고 있다. 하지만 향후에는 그가 거주하는 경기도 부천 일대에 별도의 숙소와 운동장을 마련할 방침이다. 선수들이 운동을 하는 시간 이외에는 지역 주민들에게 공간을 제공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아버지 김 씨는 축구 클럽을 운영하는 이유로 ‘보답’을 이야기했다.
“영권이는 축구를 하며 힘들기도 했지만 많은 것을 얻었다. 국가대표로 뛰며 올림픽 메달도 따고 국민들의 사랑도 받았다. 선수 생활을 마치면 지도자도 생각하고 있다. 영권이는 축구인이다. 그동안 받은 걸 한국 축구에 조금이나마 돌려줄 수 있도록 저도 (영권이를) 잘 돕겠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김영권 ‘라디오스타’ 출연은 필연? 윤종신과 김영권 동생의 조금 특별한 인연 사진=가수 윤종신 인스타그램 캡처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맹활약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수비수 김영권이 연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영권은 대표팀 조별예선 3경기에 모두 출전해 단단한 수비력을 선보였고, 독일을 상대로는 결승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김영권의 아버지 김성태 씨는 “여기저기 인터뷰도 많이 하고 바쁜 것 같다”면서 “나한테도 언론사에서 연락이 온다”고 전했다. ‘일요신문’과 김 씨가 만난 지난 10일은 김영권이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 녹화를 마치고 방영을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방송에 대해 묻자 그는 방송 진행자 중 한 명인 가수 윤종신에 대해 “우리 가족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며 사연을 소개했다. 다음은 김 씨와 일문일답. ―MBC ‘라디오스타’ 방송 녹화는 잘 됐다고 하던가. “이용하고 조현우, 이승우가 나오는데 잘했으려나 모르겠다. 축구 선수들이 말주변이 없지 않은가.” ―워낙 인기 프로라 한동안 인기가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내가 뉴스랑 축구만 봐서 방송을 잘 모른다(웃음). 거기에 윤종신 씨가 나온다는 건 들었다. 윤종신 씨와 우리집이 인연이 있다.” ―무슨 인연인가. “영권이 동생(김영웅 씨)이 전에 음악을 했었다.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에 나갔었는데 중요한 단계에서 윤종신 씨가 불합격을 줬다. 그때 영권이 동생이 충격을 받고 군대에 갔다(웃음). 지금은 음악은 취미로만 하고 복학해서 공부하고 있다.” ―형제 축구선수가 많은데 동생은 축구를 안 시켰나. “어려서 잠시 하기는 했었다. 그런데 초반에 다쳐서 오더니 안한다고 하더라. 그런데 했으면 잘했을 놈이다(웃음). 지금도 어디 가서 재미삼아 공을 차면 제일 잘찬다. 굉장히 빠르다. 선수 했어도 잘했을 것 같다(웃음).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