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뗀 연대 러브콜 받고 흔들
▲ 한나라당과 박근혜 지지세력인 미래희망연대의 합당은 6·2 지방선거 승리와 향후 친박 세력 흡수라는 측면에서 친이 측이 고려해볼 만한 카드다. 사진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 ||
현재 여권 주류 일부 의원들이 미래희망연대 측과 접촉하며 합당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친이 측의 합당 제안에 대해 미래희망연대 내부에선 부정적 기류가 강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당 지도부가 구속(공직자선거법 위반 혐의) 중인 서청원 대표의 사면 및 합당 문제로 인해 그간 지방선거체제로의 전환을 유보하면서 당원들의 불만을 사 ‘내홍’까지 빚어지고 있다. 최근엔 서청원 대표 사면이 물 건너가면서 친이와의 결사항전을 외치는 ‘강경론’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 그러나 일각에선 “일단 (합당) 조건을 보고 판단하자”는 ‘유보론’도 흘러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선 한나라당과 미래희망연대 합당 여부를 지방선거를 요동치게 할 큰 변수 중 하나로 꼽고 있다. 한나라당 친박이 아닌, 친이 주류가 미래희망연대 끌어안기에 나선 속사정을 들춰봤다.
한나라당과 미래희망연대의 합당설은 정치권에서 그다지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2008년 총선 이후 열 번 이상은 합당 얘기가 오갔을 것이다. 그러나 친이는 물론 친박조차 별로 관심이 없어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귀띔했다.
친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친박 측은 왜 미래희망연대와의 합당에 적극적이지 않았을까. 한 친박 의원은 그 이유를 “박근혜 전 대표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최근에 당명을 바꾸긴 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딴 ‘친박연대’가 한나라당으로 합쳐지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꼈을 것이란 얘기다. 이어 이 친박 의원은 “우리가 친이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긴 하지만 같은 당 소속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래희망연대는 외부에 있기 때문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느냐. 언젠가는 같이 가야 하겠지만 아직은 지금 그대로가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동안 잠잠하던 양당의 합당설은 올해 초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엔 친이계가 그 진원지였다. 수도권의 한 친이 의원 보좌관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리 쪽에서 미래희망연대를 안고 가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영남과 경북 몇몇 지역과 수도권 일부에서 지난 총선의 재판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 후였다”고 전했다. 미래희망연대는 지난 총선에서 13.3%의 지지율을 얻으며 14명(지역구 6, 비례대표 8)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바 있다. 당시 당선자 대부분이 한나라당 텃밭에서 친이 후보를 눌렀던지라 여권 주류로서는 ‘악몽’이 되살아나지 않을 수 없었을 듯하다. 앞서의 보좌관은 “미래희망연대가 태생적으로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당이기 때문에 성사 가능성은 낮았지만 일단 시도는 해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우리 쪽에서 뭔가 구미가 당길 만한 ‘당근’을 제시한다면 이뤄질 수도 있다고 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미래희망연대는 친이 측 제안에 대해 겉으로는 ‘NO’라고 일축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약간의 공방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서청원 대표 측 인사들은 “사면을 시켜준다면 (합당 제안을) 받아들이자”면서 “어차피 대선 전에 당에 들어가 박 전 대표를 위해 일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리를 폈다고 한다. 미래희망연대의 한 관계자는 “사면도 사면이지만 당 정체성에 관해 많은 논의를 했다. 만약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우리 몸값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에 6월 전에 한나라당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다만 합당을 제안한 쪽이 친이라는 것을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일단 서 대표 사면 여부를 지켜본 후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지난 2월 말 서 대표는 사면을 받는 데 실패했다. 미래희망연대 측은 “여권 주류가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았다”며 분노했다. 미래희망연대의 한 의원은 “합당을 제안한 친이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로 우리 발목만 잡으려는 것 아니냐. 뭐 큰 조건을 내건 것도 아니고 당 대표 사면을 원했던 것뿐인데 너무했다”면서 “그동안 친이 측을 자극할까봐 지방선거 준비도 최대한 미루고 있었는데 이제는 본격적인 지방선거 모드로 돌입할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당선되지 않더라도 친이 후보는 탈락시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 대표 주변에서는 여전히 사면의 끈을 놓지 않고 합당 쪽에 방점을 찍으려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선거체제 전환이 지지부진한 데 대한 당내 갈등이 커지면서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입장이 됐다.
▲ 합당에 반대하는 미래희망연대 당원들. 연합뉴스 | ||
이처럼 미래희망연대가 지방선거를 위한 전열을 갖추자 지난 총선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여권 주류 내부에선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청와대의 한 정무라인 관계자는 “미래희망연대로 인해 여권 표가 분산될 것이다. 벌써부터 경남과 경북의 일부 지역에선 한나라당 공천을 포기하고 미래희망연대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공감대가 당·청 사이에 형성돼 있고, 합당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나라당의 한 전략가 역시 “미래희망연대가 당에 들어오면 그래도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한데 지금은 밖에 있기 때문에 아예 불가능하다. 합당하면 당연히 친박계로 흡수되겠지만 우리가 수적으로 우위에 있으니 한번 해볼 만하다. 또 합당 과정에서 이탈세력이 생기지 않겠느냐. 청와대와도 이러한 입장을 조율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여권 주류가 미래희망연대를 설득시키기 위해 어떤 조건을 제시했는지에 대한 관심도 높다. 이와 관련, 최근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기자에게 “지방선거 후에 치러질 차기 전당대회에서 미래희망연대의 일정 지분을 보장해주는 방안이 나오고 있다. 서 대표 사면 역시 긍정적으로 재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중도성향의 한 중진의원은 “미래희망연대 측에 지분을 주겠다는 것은 곧 친박계 세력이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서 대표 사면 역시 이명박 정부가 비난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이계에서 이런 말들이 들리고 있는 것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만큼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미래희망연대 측은 여전히 친이의 합당 제안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친박계에서도 당분간 미래희망연대가 한나라당에 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미래희망연대 상당수 당직자들을 중심으로 합당설에 동조하는 듯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어 관심을 끈다. 한 당직자는 “아무리 대표라 하더라도 개인의 사면을 가지고 당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 말이 되느냐. 사면해주지 않았다고 논의조차 하지 않는 것은 매우 유치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비록 친이계가 먼저 합당을 꺼내들긴 했지만 중요한 건 그 이후 아니겠느냐. 당에 들어가서 박 전 대표의 차기 대권 행보를 돕는 게 최종 목표라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 우리로서는 챙길 것은 챙길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지만 정치권에선 향후 지방선거가 치열해질수록 합당 논의 역시 더욱 불이 붙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여의도의 한 정치컨설턴트는 “지금의 상황을 봤을 때 가능성이 그리 높진 않지만 한나라당과 미래희망연대가 합당 혹은 연대할 경우 선거 판도는 크게 요동칠 것이다. 전통적으로 여당이 지방선거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지만 합당 여부에 따라 이번엔 달라질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선거 이후의 국정 운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합당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박 전 대표가 어떤 스탠스를 취할 것인가가 합당을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