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 다룬 ‘그알’ 방송 이후 화제된 ‘아수라’…“우연이다” vs “의도했다”
영화 ‘아수라’ 스틸컷
2016년 나온 영화 ‘아수라’(감독 김성수·제작 사나이픽처스)가 느닷없이 화제의 중심에 놓였다. 순위권에서 멀어져 있던 온라인 다운로드 순위가 급등하고 포털사이트 검색순위도 장식하고 있다. 허구인 줄 알았던 영화 속 이야기를 두고 ‘실화를 옮긴 것 아니냐’는 시선을 받고 있어서다. 논란은 SBS 시사고발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가 제기한 의혹에서부터 시작됐다.
# ‘아수라’ 인물·지역·사건까지, 이쯤 되면 ‘예언’
‘그것이 알고싶다’는 지난 21일 방송한 ‘조폭과 권력:파타야 살인사건, 그 후 1년’ 편을 통해 경기도 성남시를 무대로 활동하는 조직폭력배와 경찰 그리고 정치인의 커넥션을 폭로했다. 이로써 성남국제마피아파라는 이름의 조직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은수미 성남시장이 연관됐다는 의혹을 파고 들었다.
특히 이재명 지사는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2007년 무렵 국제마피아파 조직원의 변호를 담당했고, 이후 성남시장 재직 시절 조직원이 설립한 회사가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데도 우수중소기업으로 선정하는 등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은수미 성남시장 역시 해당 조직에 몸담은 조직원을 운전기사로 활용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당사자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꼼꼼한 취재를 통해 밝혀낸 의혹 제기인 만큼 여론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다룬 내용과 쏙 빼닮은 영화 ‘아수라’가 단연 화제다. 방송 다음날인 22일 영화 다운로드 사이트인 네이버N스토어(이하 동일기준)에서 일일 순위가 3위까지 치솟았다. 2016년 9월 개봉작이란 점을 고려하면 방송 후폭풍이 고스란히 ‘아수라’로 향하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음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런 관심은 지속되고 있다. 23일에는 다운로드 순위 1위에 올랐다. 사실 ‘아수라’는 개봉 당시 악랄한 인물들이 벌이는 악행을 지나치게 잔인하게 묘사하면서 259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지만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분위기는 웬만한 흥행작의 열기 못지않다. 과한 반응이라고 치부하기엔 영화가 담은 내용이 예사롭지 않다.
영화 ‘아수라’ 스틸컷
배우 정우성과 황정민, 주지훈이 주연한 ‘아수라’는 수도권 근교 중소도시 ‘안남시’가 배경이다. 조직폭력배를 등에 업은 현직 시장(황정민)과 그의 뒷일을 처리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 강력계 형사(정우성), 이들의 약점을 노리면서 시장의 비리를 캐내려는 검사(곽도원), 그리고 시장의 하수인이 된 전직 형사(주지훈)가 한데 엮여 물고 물리는 이야기다. 영화는 악인은 도처에 널려있다는 설정 아래, 모든 등장인물을 악인으로 묘사한다.
개봉 직후 관객이 가장 큰 궁금증을 보인 부분은 극 중 배경인 ‘안남시’라는 지역의 존재 여부다. 현실에는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그 지명을 두고 경기도 안산시와 성남시의 이름을 합친 설정이라는 해석이 분분했다. 시장 역을 맡은 황정민이 영화에서 ‘안남을 제2의 분당으로’라는 공약을 내건 설정도 이런 시선에 힘을 보탰다.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은 김성수 감독은 개봉 당시 안남시라는 지명에 얽힌 여러 이야기가 퍼지자 “있을 법한 여러 이름을 작명해놓고 골랐다”고 설명했다. 특정 지역을 의식하지 않았다는 해명이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상황에서 돌아보면 어떤 의도가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김성수 감독의 ‘빅픽처’?
개봉 당시만 해도 단순히 해석의 여지로 남았던 이런 반응은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이후 거침없이 확산되고 있다. 하물며 영화에서 스쳐지나가는 장면에 담긴 의미를 찾으려는 움직임도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활발히 이뤄진다. 가령 황정민이 찾아간 장례식 장면 근조화환에 쓰인 문구들 역시 이유 없이 삽입된 게 아니라는 해석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는 식이다. 영화 속 장례식장 장면에 내걸린 근조화환들에는 ‘경원대학교’ ‘민주연합’ ‘인권연구소’ 등의 기관명이 적혀 있다. 이런 기관들은 실제로 이재명 지사와 직접 연관된 키워드다.
이재명 지사는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하지만 석사논문 표절 판정으로 학위를 취소당한 전적이 있다. 또한 이 지사가 몸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은 새정치민주연합이다. 또한 정계입문 전 인권변호사로 20여 년간 활동한 경력도 이 지사를 대표하는 이력이다. 누리꾼들은 이 지사에 대한 상징적인 단어들을 근조화환 문구로 삽입한 상황을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영화 ‘아수라’ 스틸컷
제작진은 “이 영화에서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 지명, 회사 단체 및 그 밖의 일체의 명칭 그리고 사건과 에피소드 등은 모두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다”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힌다”고 명기했다. 영화를 볼 땐 의식하지 못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의미심장한 문구다.
영화의 ‘현실 예언’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이병헌 주연의 ‘내부자들’ 역시 엄연한 허구의 창작물이지만 2015년 개봉 이후 영화 속 주요 에피소드와 닮은 일이 현실에서 반복해 일어나 주목받았다.
심지어 영화를 따라한다고 해도 믿겨질 만큼 전방위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대표적인 사건이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개돼지’ 발언이다. ‘내부자들’에 나온 “민중은 개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는 대사를 그대로 읊어 논란을 야기했다. 이후 대기업 자금 담당자가 검찰조사를 받다가 자살하는 내용 역시 현실에서 벌어졌다. 또 백윤식이 연기한 유력 일간지 주필이 기업을 위해 사설을 쓰고 향응을 받는 행위와 똑같이 닮은 사건이 현실에서 벌어져 언론인의 도덕적 해이가 지탄 받기도 했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그만큼 모호하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