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볼턴 “생화학무기, 핵폐기 프로세스에 포함”…북한은 ‘묵묵부답’…일각선 ‘걸림돌’ 우려
그런데 유심히 지켜볼 대목이 있다. 바로 북한의 생화학무기 체계다. 그동안 CVID(완전 검증 가능한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라는 개념에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체계 중에서도 사실상 핵무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최근 미국 측은 이를 직접 거론하고 나섰다. CVID 개념에 당연히 북한의 생화학무기 폐기도 포함됐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북한의 공식적인 입장이나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이 문제가 북미 양국 간 협상 이행 과정에서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특히 이 문제는 국내보단 국제사회의 주된 관심사가 되고 있는 모양새다.
미 상원 외교위원회에 참석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이 자리에서 북한의 생화학무기를 언급했다. 연합뉴스
북미 관계의 핵심 행위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7월 25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서 폼페이오 장관은 북미정상회담 이후 합의 이행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문 공세 속에서 그간 과정과 입장을 피력했다.
주목해 볼 대목은 크게 두 가지였다. ‘북한이 여전히 핵물질을 생산하고 있느냐’ 그리고 ‘북한이 생화학무기 폐기를 약속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폼페이오 장관의 답변이었다.
우선 첫 번째 질문에 폼페이오 장관은 “나 역시 북한이 여전히 핵물질을 생산하고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선 “북한이 비핵화란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직접적인 답변을 삼가면서도 결국 추가 질문에 “북한과 생화학무기에 대해 논의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폼페이오 장관의 미지근한 답변은 여러 해석을 야기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북한과 CVID라는 개념을 두고 생화학무기의 포함 여부에 대해 입장이 오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폼페이오 장관의 미지근한 반응은 그 협상이 그리 쉽지 않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이에 앞서 북미 관계에 있어서 악역(?)을 맡고 있는 강경파 존 볼턴 백악관 보좌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완전한 비핵화 프레임 안에는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은 물론 생화학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포함한다”고 단호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이렇듯 미국 측은 협상 단계서부터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북한의 ‘생화학무기’를 거론하고 있지만, 북한은 그 어떤 입장이나 움직임조차 포착되지 않고 있다.
6·25전쟁 정전 65주년인 7월 27일 평양의 6·25전쟁 전몰자 묘역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대북소식통은 “북미정상회담 합의문엔 CVID의 개념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비핵화에 대한 노력’이란 포괄적인 개념만 존재한다”며 “현재 미국 측이 줄곧 ‘북한의 생화학무기 역시 핵폐기의 일환‘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그것이 북미 사이 합의된 핵폐기 프로세스에 포함됐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이 문제가 합의안에서 그저 ‘세컨더리 서브젝트(secondary subject·부차적인 협상)’ 차원으로 거론됐다면, 진짜 걸림돌이 될 수가 있다”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이 소식통은 “이 문제는 미국 내부를 포함한 해외에서 큰 관심을 두고 있다. 딱 우리만 관심이 없다”라며 “핵무기가 정치적 파급력이 강한 성격을 지닌다면, 생화학무기는 실질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불과 얼마 전 시리아 내전에서 그 실상을 똑똑히 목격했기에 북한의 생화학무기 체계는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미국 입장에선 상당히 골치 아픈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대량살상무기의 성격이 그렇듯 생화학무기 역시 저비용 고효율의 무기 체계다. 이 때문에 가난한 나라들의 무기로 불리기도 한다. 북한 역시 핵개발만큼이나 오랜 기간 생화학무기 개발에 힘써왔다.
오히려 북한의 생화학무기는 수많은 공개 시험 속에서 그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북한의 ICBM 및 SLBM 등 미사일 발사 체계와 달리 그 생산 및 전력화 능력은 상당 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다.
다만 우리 국방부는 북한이 탄저균, 천연두, 페스트 등 13종 이상의 생물학 무기 배양 및 생산 능력을 갖췄으며 각종 신경작용제를 포함한 화학무기 2500~5000t을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해 2월, 북한 소행으로 추정되는 김정남 살해사건의 사인이 VX라 불리는 맹독성 화학무기로 밝혀지기도 했다.
북한의 생화학무기 개발 및 생산 핵심시설은 평안북도 정주에 위치한 ‘생화학연구소’다. 이 연구소는 제2자연과학원(국방과학원) 산하기관으로 확인된다. 이와 함께 군수공업부 산하의 중앙생물학연구소, 군의학대학, 균주보관소, 공업미생물연구소, 군 세균연구소 등 그 체계와 범위가 핵무기의 그것과 비교해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북한의 일선 화학 관련 공업시설에서 원료를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앞서의 대북소식통은 “북한이 생화학무기를 지금도 개발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렇다’”라면서 “미국의 직접적인 언급과 국제사회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아직 북한 내부에서 이 부분에 대한 ‘선제적 조치’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이 대목은 분명 북미 간 이행 과정을 놓고 볼 때 꼭 지켜볼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