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고 말 바꾸고… 이건 아니잖아
▲ 지난 30일 이명박 대통령이 백령도 천안함 침몰 사고현장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독도함에서 광양함으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 ||
사실 이 대통령은 사건 발생 나흘 뒤 “해군의 초기 대응이 아주 잘되었다”라고 군을 칭찬했지만, 현재 이 말에 동의할 국민은 거의 없다. 이렇듯 이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존재하는 ‘침몰’에 대한 온도차는 ‘이명박 일방주의’로 민의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 더 큰 화를 불렀던 지난 2008년 6월의 촛불정국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물론 당시와 같은 대대적인 국민 저항 운동은 나올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명박 정권의 능력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6·2 지방선거에서 ‘표심’으로 표출될 것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3·26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총체적 난국에 빠져들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현 좌표를 따라가 봤다.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 1200톤급 천안함이 백령도 근방에서 순식간에 침몰했다. 이는 북한 영토와 불과 50여㎞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우리의 중형급 군함이 단 몇 분 만에 두 조각이 난 사상 초유의 안보사건이다. 실종자가 46명에 이르러 초대형 인명사건이 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사건 발생 10여 일이 흘렀음에도 원인 규명은커녕 실종자 수색도 제자리걸음이다. 사태가 이쯤 되자 국민들도 “이명박 정권이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음모론’에 귀가 솔깃해지고 있다.
이런 국민들의 의구심은 사건 발생 3일 만에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 즉각 반영됐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불과 사흘 만에 11%포인트나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3월 26일 51.1%→3월 29일 40.0%). 그런데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천안함 침몰 정국이 앞으로도 이 대통령의 지지율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한다.
여기에는 이번 천안함 침몰사건을 대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국민들 간의 온도차가 자리 잡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천안함 침몰사건이 지난 2008년의 촛불정국과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까지 진단한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이에 대해 “지난 2008년 6월 미국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불이 붙었던 촛불집회는 정권 출범 4개월 만에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10%대로 끌어내린 최대의 국민적 저항운동이었다. 당시 정권은 촛불집회의 근본적인 정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국민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 진압에만 열을 올릴 뿐, 그 속에 숨은 ‘이명박 일방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반성은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이 대통령은 백기를 들고 청와대와 내각의 대대적인 개편을 통해 간신히 촛불정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정치컨설턴트는 이번 천안함 침몰 사건도 촛불정국의 정국 대처 패턴과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사건 초기 ‘해군의 초기 대응은 아주 잘 되었다’라며 공개적인 칭찬을 늘어놨다. 당시는 침몰한 천안함의 위치도 파악되지 않았다가 어선이 먼저 찾았을 정도로 군의 초기 대응에 논란이 있었던 때다(이에 대해 여당의 한 재선의원은 기자에게 ‘이 대통령의 그 한마디 때문에 이번 사건이 민심과 대통령이 따로 노는 형국으로 가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일부에서 너무 감이 없는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심은 그런 평가와는 반대로 군의 계속되는 말 바꾸기 등으로 인해 불신만 증폭됐다. 이 대통령이 이번에도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라고 지적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 지지층 사이에서도 이번 사건 대처 과정과 관련해 ‘외부변수라면 보수층을 대변하는 대통령의 안보의식이 결여된 것이고, 내부변수라면 진보정권 10년 동안 망가진 군 기강 확립을 외쳐온 그의 국군 통수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 대통령의 ‘능력’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 내지는 불신의 표출이 이번 사건을 대하는 국민들의 대체적 여론인데 청와대는 그것을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번 천안함 침몰 사건을 바라보는 청와대의 시각에서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것에 비해 다소 안이한 분위기도 읽을 수 있다. 지금 국민들은 목숨을 걸고 적과 가장 가까운 백령도 근방을 방문하거나, 밤잠을 설쳐가며 고민하고 생각하는 ‘대통령의 제스처’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번 사건의 본질과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대통령의 용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자세’는 그리 신중하지 못한 것 같다. 이 대통령은 최근 천안함이 두 동강 난 것과 관련해 “내가 배를 만들어봐서 아는데 파도에도 그리 될 수 있다. 높은 파도에 배가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과정에서도 생각보다 쉽게 부러질 수 있다. 사고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가 뭘 해봐서 안다”는 말은 이 대통령이 자주 하는 일종의 ‘강조어법’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여의도 정가의 한 관계자는 “‘모르는 게 없는’ 이 대통령이 아무리 개인적 경험이 많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중대한 문제에 대해 자신의 사적 견해를 일방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근거도 없고 신중하지도 못한 자세다”라고 꼬집었다. 국가의 중대 안보 정국에 임하는 대통령의 ‘입’이 너무 가볍다는 지적이다.
이런 신중치 못한 대응을 두고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과 청와대가 천안함 침몰 사건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 정무라인에서는 “이번 사건의 진상 규명이 예상보다 훨씬 길어져 자칫 장기미제로 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흘리고 있다. 이 대통령 자신도 사고 원인 규명과 관련해 “굉장히 오래 걸릴 수 있다. 1년이 더 걸리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진상 규명이야 1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밝혀지면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침몰 시각부터(밤 9시 45분에서 9시 22분까지) 몇 차례 바뀌는 당국의 오락가락 발표 내용을 국민들이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면 청와대의 이 같이 느슨한 대응 자세는 “어차피 터진 사건이니 장기 미제로 남겨 부담을 차츰 덜자”(한나라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의도로 읽힐 가능성도 충분하다. 국민들도 바로 이런 부분 때문에 의심과 우려를 하고 있고, 결국 국민의 눈은 허무맹랑한 ‘지방선거용 자작극’을 비롯한 각종 음모론으로까지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이런 온도차는 지방선거 등 정치 환경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이번 사건은 안보를 가장 중요시하는 보수층이 이 대통령의 ‘능력’에 대해 불신을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에 대해 ‘안보 적임자가 아니다’라는 낙인을 찍게 되는 순간 보수층의 결집력이 떨어질 수 있다. 전통적으로 지방선거 승패는 ‘집토끼’의 동원력에서 결정되는데 천안함 침몰사건에서 보여준 이 대통령의 불안한 리더십과 ‘흐릿한’ 안보의식에 등을 돌린 보수층의 이탈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안보 낙제점을 받은 이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진보층이 대거 일어나 제2의 촛불정국으로 이어가기에는 이슈 자체(안보문제)가 약한 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변수가 있다. 천안함 침몰에 대한 원인 규명 논란이 선거 기간 내내 계속될 경우 그 블랙홀이 지방선거 이슈를 모두 빨아들여 ‘무명’의 후보들에게는 최악의 선거가 될 수도 있다. 반면 인지도가 있는 현역들은 천안함 블랙홀에 지방선거가 묻힐 경우 ‘찍는 사람에게 다시 찍는’ 행운을 얻을 기회가 더 커질 수 있다. 그런데 선거를 앞두고 이번 사건의 원인이 거의 명확히 밝혀진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정치권에서는 북한의 공격으로 결론이 날 경우 국가 안보에 구멍을 낸 장본인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거론되면서 ‘책임론’이 부각돼 선거전이 여권에 불리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 원인으로 밝혀지면 이 대통령에게는 더욱 큰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안보 전도사’를 자처하며 각종 군 행사에 직접 참석하는 등 군 기강 확립에 역점을 둬온 이 대통령에게 더 큰 책임론이 덧씌워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권 일각에선 “차라리 북한 공격으로 결론이 나는 게 우리로선 더 낫다”라는 아이로니컬한 넋두리도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레임덕을 결정지을 6·2 지방선거를 두 달여 남겨두고 천안함 침몰사건이라는 가장 어려운 시험지를 받아들었다. 국민들이 제시하는 정답은 “이번 사건이 사상 초유의 안보사건이란 점에서 선거를 떠나 국군 통수권자로서 솔직하고 용기 있게 마주설 것”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사건 초기부터 터져 나온 진실 은폐 논란 등으로 이 대통령의 답안지는 점차 오답의 심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