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사건 청와대 ‘위기대응 프로젝트’ 실체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월 30일 광양함에 승선해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 ||
대신 청와대는 미국 영국 등 외국 전문가를 포함한 대규모 민군합동조사반을 이번 침몰 사건의 ‘탈출 루트’로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청와대는 ‘사공 많은 배가 산으로 갈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최대한 진상규명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이런 ‘지공작전’은 지방선거를 북한에 의한 도발이라는 ‘의혹 정국’으로 몰아 여당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할 가능성을 높여 준다. 청와대 핵심부에서 구상 중인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한 장·단기 위기 대응책을 따라가 봤다.
“기자님들 갖고 계신 거기 시계들은 다 정확한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제 컴퓨터는 안 맞더라고요.”
천안함 침몰 사건의 핵심 요소인 발생시각을 최종 확인하는 데 무려 13일이 걸린 국방부의 원태재 대변인이 최근 그 원인에 대해 내뱉은 대답이다. ‘시간’이 생명인 군대의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군에서 발표하는 쟁점사안에 대한 시각이 왜 제각각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아무 일도 아닌 듯하게 대답하는 게 대한민국 국방 시스템의 현 주소다. 이 대답을 접했던 대다수의 국민들은 ‘보고의 핵심사항인 군대의 시계와 일반인들의 시계가 다를 게 뭐가 있느냐’라고 항변하는 국방부 대변인의 뻔뻔함에 기가 질린다는 반응이었다.
이런 군에 대한 불신 기류는 애초 ‘초기 대응을 잘했다’라며 칭찬을 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행보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대통령의 현 대응책을 보면 애초 군의 사기 문제에 따른 ‘전폭적 신뢰 표출’에서 ‘불신’으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먼저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31일 박정이 합참 전력발전본부장(육군중장)을 단장으로 한 전문가 60~80여 명의 민·군 합동조사단 구성을 재가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민·군 조사단 구성 6일 만에 “합동조사단 책임자는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민간 전문인사가 맡도록 해야 한다”라고 지시했다. 박정이 육군중장이 당연직으로 맡고 있던 조사단장직을 민간인과 공동으로 맡으라는 것이었다.
이에 청와대 주변에서는 “이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군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라거나 “군 사건에 민간에서 단장을 맡으면 군사기밀이 유출돼 보안에 치명적이다”라는 주장이 흘러 나왔다. 이 시기를 전후해 천안함 침몰 사건의 대응은 ‘안보영역’에서 ‘정무영역’으로 옮겨갔다. 합동조사단장직 결정은 이 대통령이 몇몇 수석들과의 약식 회의를 통해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안보파트보다 정무 쪽 의견이 많이 반영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민·군 조사단 구성에도 성이 차지 않는 듯 미국 군사전문단과 영국 호주 스웨덴의 해양사고 전문가들도 참여시킬 것을 지시했다. UN에 공동조사 지원을 요청하라는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방부가 유엔 회원국들을 상대로 접촉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도 전해진다. 이를 통해 보면 대통령의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대응의 초점이 군(초기 대응 잘했다며 힘 실어주기)→민(민·군 합동조사단 구성 지시)→국제사회(UN 공동조사 지원 요청)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는 침몰 원인에 대한 철저한 규명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분히 ‘정치적’ 판단에서 나온 고육지책으로도 보인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먼저 지방선거를 앞둔 청와대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천안함 침몰 정국의 태풍에서 최대한 벗어나야만 한다. 침몰 원인이 지방선거 전에 밝혀지면 어떤 식으로든 책임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민주당은 벌써부터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그럴 경우 지방선거는 천안함 침몰 책임소재 공방으로 번지게 된다. 여당의 고전이 빤한 대목이다. 하지만 합동조사단의 규모가 UN의 참여로까지 확대될 경우 원인 규명 일정은 늦춰질 수 있다. 또한 100명이 넘는 대규모 조사단 구성이 민간, 실종자 가족에 남북대치의 특수성을 잘 모르는 외국 전문가들까지 확대된다면 침몰 원인에 대한 합치된 결론 도출이 어렵고 시간도 더 소요될 가능성이 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지방선거 전까지 천안함 침몰에 대한 ‘의혹 정국’이 조성될 경우 여당에 유리할 수 있다. 북한 공격에 대한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찾지 못하는 의혹 정국이 계속되면 북풍의 영향으로 여당에 불리할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이번 사건에 대한 규명이 쉽지 않을 것이다. 장기전으로 갈 것이다. 북한 의혹 쪽으로 가면 선거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천안함 침몰에 국제사회 공조를 ‘직접’ 지시한 또 다른 배경은 이번 사건을 남북관계의 갈등에서 나온 국내의 안보사건에서 국제 사회의 평화문제로까지 확대할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수도권 대학 정치학과의 한 교수는 이에 대해 “UN 등과 공동보조를 맞추며 조사를 진행해 그것이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질 경우 이번 사건이 남과 북의 갈등문제에서 국제평화세력 대 전쟁도발세력의 대결 구도로 진화 확전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이 대통령이 천안함 문제를 G20 개최와 연계시키며 국격을 언급한 것도 이번 사건에 대해 남북 갈등의 관점보다 북한의 비상식적인 도발 행위를 국제사회의 이름으로 그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도 포함된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 대통령의 국제사회 공동조사 지시는 향후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우리 정부 대응책의 일단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사건이 만약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질 경우 북한기지 타격 등과 같은 강공이 아닌, ‘국제사회와의 공동보조’를 통해 외교적 압박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전 단계 조치가 바로 공동조사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 통일관계 전문가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 상당한 열정을 보이다 이번 사건이 터졌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북측이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액션을 취한 것이 천안함 타격으로 나타났다는 시각도 있다. 그럴 경우 이번 사건은 북한이 이 대통령에게 던진 남북관계 진전의 가장 어려운 테스트라고 봐야 한다. 이 대통령이 북한 소행을 감지하면서도 즉각 보복공격 등에 대해 부담을 느낀 점도 향후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킬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라고 전제하면서 “이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국내 문제임에도 국제사회와의 공조 틀 속에서 풀려고 하는 까닭도 외교적 수습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사건이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질 경우 이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공동조사와 같은 방법으로 책임소재를 가려내고 그에 따른 처벌과 보상 및 재발방지 등의 협의를 통해 UN의 대북 제재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런 외교적 수습 노력을 통해 포괄적으로 북한을 압박해 남북정상회담으로 이끌어낼 가능성도 이 대통령이 고려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민·군 합동조사단 아이디어나 국제사회 공조카드는 국내 여론의 만만찮은 반격을 받고 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런 식이라면 ‘전쟁도 민간에 맡기자’는 어리석은 발상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군의 사기를 저하시킴은 물론 군사기밀을 무차별 노출시켜 안보에 심각한 위해요인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라고 말했다. 보수층에서도 “자기 나라 국방 문제를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아 해결하겠다는 것은 일종의 몽상이요, 노예근성”(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고 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조선 세계 1위인 나라가 뭐가 아쉬워서 선박 사고 난 걸 외국에 손을 벌리나” “불신을 키운 당사자가 누군데 엉뚱한 데 화살을 돌리는지 이해가 안 된다. 외국 끌어들여 보안 유출에 세계적인 웃음거리밖에 안 될 것”이라는 등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국제공조 카드가 유효할지도 의문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의 천안함 정국 대처가 군-민-국제사회로 이동하면서 안보 문제를 외국과 연계시켜 자신의 책임을 면피하려는 얄팍한 수로 보인다. 그것은 결국 자신의 최대 지지기반인 ‘집토끼’의 이탈을 부추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북한의 일방적인 공격에 놀아나다가 결국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뼈아픈 지적도 나온다. 여의도의 한 정치전문가는 이에 대해 “무엇보다 지금까지 북한이 미얀마 아웅산 테러 사건, KAL기 폭파사건 등의 대형 안보사건을 터뜨린 뒤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번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민·관·군과 국제사회 공조카드도 이 대통령이 북한에 휘둘리기만 하다가 결국 강경대응도 못하고 외교적 압박도 가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대응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경제대통령을 자임한 이 대통령이 통일과 남북관계에 대해선 전혀 철학이 없는 것임을 방증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창졸간에 우리의 1200톤 초계함 천안함은 침몰했고 그 원인은 여전히 깜깜한 바다 속에 묻혀 있다. 그것이 만약 북한의 소행이라고 하더라도 이 대통령이 꺼내들 수 있는 카드가 고작 국제사회와의 공조라는 게 이명박 정권 3년의 대북정책 실상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