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원격 지시 따라 손발 묶고 입관…치병의례? 임종체험? 어느 쪽이라도 ‘비상식’
최근 원룸에서 퇴마의식을 벌이던 한 여성이 사망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퇴마의식이 진행됐던 구미시 내 원룸 빌딩.
지난 3일 오전 6시 30분쯤 구미시 진평동 한 원룸에서 40대 여성 A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원룸에 함께 있던 50대 여성 B 씨와 C 씨는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 A 씨가 호흡이 멈춘 상태임을 확인하고 119에 신고했다. 구미소방서 관계자는 “현장에서 A 씨가 사망했음을 확인하고 경찰에 바로 인계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당시 A 씨가 별다른 외상 없이 바닥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조사 결과 A 씨는 유사 임종체험을 하다 숨을 거둔 것으로 드러났다. 전날 오후 8시쯤 A 씨는 손발을 노끈으로 묶고 관 속에 들어가 귀신 쫓는 의식을 치렀던 것.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의식을 시작하고 약 2시간이 지난 후 숨을 쉬기 어렵다며 관 밖으로 나왔지만, B 씨 등 일행은 조금만 더 참을 것을 권유했다. 일행은 A 씨를 다시 관으로 들어가게 한 뒤 관 뚜껑을 닫고 그 위에 이불까지 덮었다. 이봉철 구미경찰서 형사과장은 “관 위에 이불까지 덮으니 사실상 공기가 통할 수 없었다”며 “골절이나 신체 장기 등 내부 손상이 없던 것을 미뤄봤을 때 새벽에 질식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현재 B 씨와 C 씨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당시 B 씨 일행은 자신들의 혐의를 숨기고자 의식을 치르는 데 사용했던 관과 노끈 등을 숨긴 뒤 신고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경찰은 당시 A 씨의 손목과 발목에 남겨져 있는 노끈 자국을 수상히 여기고 일행을 추궁, A 씨가 의식을 치르다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관련 물품들은 옥상에서 발견됐다.
A 씨 등 일행이 퇴마의식을 벌이던 원룸 문 앞. 현재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
서로 다른 곳에 살던 이들은 A 씨가 사망하기 3일 전부터 구미에 모여 각자의 손발을 묶고 의식을 진행했다. 용변을 보거나 식사를 할 땐 손발을 서로 풀어주는 식이었다. 이들 의식은 한 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진행됐다. 이 형사과장은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이 전화상으로 이들의 의식을 지시했다”며 “이들이 의식진행 과정에서 관을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이들이 특정 종교단체에 소속됐거나 일부 교단의 지시를 따른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다. 우편함에서 각종 종교 관련 우편물 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이 형사과장은 “우편물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종교전단지로 이들이 특정 모임이나 단체에 소속됐다고 연관지을 만한 정황은 없었다”며 “개별적으로 사람들과 접촉해 신풀이를 해주거나 무당 비슷한 일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웰다잉’(삶의 마지막 순간을 미리 준비해 이를 평안히 맞이하자는 의미) 열풍으로 임종체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던 상황에서 해당 사건은 충격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임종체험도 모의 입관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A 씨가 일반적인 임종체험을 진행하다 죽은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하지만 실제 임종체험을 운용·시행하는 기관들은 A 씨 일행이 진행한 의식이 임종체험 본연의 의미에서 상당히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 방식도 굉장히 부적절하다고 평가한다. 무료 임종체험을 진행하고 있는 ‘효원힐링센터’ 정용문 센터장은 “임종체험은 본래 죽음을 간접 경험함으로써 삶을 돌아보고 화해와 용서, 사랑 등 감정의 중요성을 깨닫는 의식”이라며 “귀신을 쫓는 것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입관의 의미도 다르다. 일반적인 임종체험에서 입관은 죽음을 연출하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오히려 입관 전에 실시하는 자기반성과 유서 작성·낭독 등에 더 큰 가치를 둔다. 입관시간도 최대 10분을 넘기지 않는다. 임종체험 전문기업인 ‘아름다운 삶’ 서란희 이사는 “입관을 진행할 시 혹시 모를 사고 등에 대비해 항시 사람이 옆에서 보조를 한다”며 “밀폐된 공간을 원치 않을 경우 관 뚜껑을 열거나 입관을 진행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임종체험은 절차상 원룸이 아닌 공공장소나 강당 등에서 진행, 손발을 노끈이 아닌 천이나 면으로 묶는다는 점에서 A 씨 일행이 벌인 의식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서 이사는 “구미 사망 사건은 이러한 의식 진행에 대해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진행하다가 생긴 사고”라며 “샤머니즘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의식 같다”고 평했다.
학계에선 해당 퇴마의식을 여러 종교에서 진행하는 치병의례의 일환으로 분석하고 있다. 강정원 한국민속학회 부회장(서울대 인류학과 교수)은 “종교적 의례는 크게 병을 낫도록 기도하는 ‘치병’과 소원성취를 염원하는 ‘제수’로 나뉘는데 A 씨 등 일행이 진행한 의식은 치병굿으로 보인다”며 “치병의례는 과거부터 샤머니즘을 포함해 개신교, 천주교, 불교 등 많은 종단에서 행해왔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그들 행위가 비상식적이라는 것이다. 강 부회장은 “개인이 나름의 합리성을 갖고 국내 수많은 종교 중 일부를 택해, 이를 믿는 건 자유지만 그 합리성은 사회 통념적인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며 “관을 이용해 치병의례를 진행한 사례는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성진 기자 reveal@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