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지근해진 북-미 관계 구구절 맞아 나올 메시지 주목
오는 9월 9일은 북한의 정권창립 70주년이다. 서른넷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70년 전 정부를 수립한 서른여섯 조부 김일성 주석과 마주한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올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서른넷 젊은 나이에 수많은 일을 치렀다. 두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과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과의 회담, 그리고 정전 이후 최초의 북미정상회담까지 소화했다.
그런 그가 이제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을 맞이한다. 70년 전인 1948년 9월 9일, 김일성 주석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을 수립했다.
다만 북한이 주장하는 이 정권수립일이라는 것이 논란의 여지가 좀 있다. 북한이 분단을 염두에 두고, 건국 준비를 시작한 것은 알려졌다시피 이미 1947년부터다. 물론 소련의 공조와 지시가 절대적이었다. 이듬해 북한에선 2월 임시헌법이 제정되고, 7월 10일 북조선 인민회의를 거쳐 9월 2일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한반도 전역에 헌법을 공포했다.
헌법 공포를 기준으로 한다면, 앞서의 7월 10일이나 9월 2일이 되어야겠지만 북한은 정권 수립일을 굳이 9월 9일로 정했다. 사실 9월 9일은 특별히 김일성 주석이 대단한 선언을 한 것도 아니다. 단순히 ‘내각 기구’가 들어선 날에 불과하다. 북한 입장에선 8·15 남한 정권 수립에 대한 ‘분단 책임론’을 지우기 위해 정권 수립일을 9월 9일로 명한 것이다.
어찌됐던 김일성 주석 나이 불과 서른여섯 때의 일이다. 참 공교롭게도 70년 후 정권의 ‘키’를 잡고 있는 지금의 손자 김정은 위원장의 나이와 얼추 비슷한 셈이다.
한 사람은 30대 중반에 분단 정권을 수립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역시 같은 30대 중반에 여전한 분단 정세 속에서 조부가 세운 그 정권의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다.
최근 상황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일단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예정된 방북이 돌연 취소됐다. 그동안 순조로웠던 북미 간 협상 이행에 찬물이 끼얹어진 순간이었다. 급기야 8월 28일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그동안 유예했던 한미연합 군사훈련에 대해 “더 이상의 중단계획이 없다”며 북한에 엄포를 놓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8월 30일 성명서를 통해 “북한과의 관계는 훈풍이며 한미 연합훈련에 큰 돈 쓸 이유는 없다”면서도 “만약 재개한다면 규모가 커질 것”이라고 이중적 태도를 취했다.
현재 표면 위로 벌어진 상황을 놓고 본다면, 좋은 신호는 아니다. 수면 아래에서 어떤 소통이 이뤄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미국이 제시한 혹은 북미 양국 간에 합의한 비핵화 시간테이블을 북한이 생각보다 잘 따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탓에 북한의 이번 구구절은 유독 대외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북한은 그간 구구절을 통해 대대적인 대외 메시지를 시사했다. 당장 지금 비핵화 협의에 따른 이행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지만, 북한은 불과 2년 전인 2016년 9월 9일 제5차 핵실험을 감행하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말 그대로 제68회 정권 창립일 당일의 일이었다.
이듬해 북한은 역시 구구절을 즈음한 9월 2일 제6차 핵실험을 감행하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의 간극을 더욱 멀게 했다. 이것이 불과 1년 전 구구절 즈음의 일이다. 이렇듯 구구절은 북핵 이벤트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날이기도 하다.
북한 정권수립 65주년 기념일을 맞은 2013년 9월 9일 평양에서 예비병력인 노농적위군 열병식과 평양시 군중대회가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현재 국제사회의 눈은 북한의 농밀한 메시지가 담긴 깜짝 이벤트와 구구절 열병식 개최 여부, 그리고 그 내용과 성격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일단 미국의 한 위성업체는 지난 8월 26일 평양 일대의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대형 글자와 인공기, 오각별 형상 등 열병식 준비 모습이 담겨 있다.
이에 앞서 해당업체는 8월 22일 미사일 탑재 차량으로 추정되는 대형 차량 6대를 포함해 대형트럭이 이동하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다만 그 미사일 탑재 차량 크기를 놓고 볼 때 세간에서 우려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이동식발사대보단 작은 것으로 추정됐다.
기자와 만난 한 대북소식통은 “올해 구구절은 70주년이기 때문에 김정은이나 북한 정권 입장에서 쉬이 넘어갈 수는 없다. 다만 현재 상황을 놓고 볼 때 ICBM급 탄도미사일이나 그것을 실은 이른바 TEL(이동식발사대)이 열병식에 등장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일단 징후가 없다”라면서도 “다만 주목할 부분은 ‘노농적위군’의 열병식 참가 여부다. 이미 지난 2013년 구구절 65주년 때 ‘노농적위군’이 열병식을 이끈 바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소식통이 말하는 ‘노농적위군’은 규모 200만 명에 달하는 북한의 예비 무장전력이다. 농민과 노동자로 구성된 이들은 평시 경제 사업에 매진하다 전시 무장 전력화되는 예비전력이다. 우리의 예비군과 비교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훈련과 전문성으로 무장한 세력들이다. 기자 확인 결과 이들은 2013년 65주년 구구절은 물론, 역시 꺾인 해였던 10년 전 2008년 60주년 구구절에도 열병식을 이끌었다.
이에 대해 앞서의 소식통은 “노농적위군은 북한의 오랜 신념인 ‘전 인민의 무장화’를 상징한다. 그들이 열병식에 등장한다는 것은 적잖은 의미가 될 수 있다”라며 “노농적위군은 ICBM이란 물리적 무기만큼이나 큰 상징성을 지닌다. 오히려 특수부대원들보다 대외적 효과가 더 클 수 있기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해당 행사에서 나올 메시지 역시 눈여겨봐야 할 것”이라고 곱씹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