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87년 2월28일 강원도 화천군 구만리에서 평화의 댐 기공식이 열리고 있다.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로 남한이 물바다가 될 것이라는 위협은 후일 전두환 정권의 ‘쇼’로 밝혀졌다. <보도사진연감> | ||
그 무렵 전두환 정권은 갖가지 반공무드 조성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에 관련된 겁주기였다. 즉 북한이 금강산댐을 만들어 수문을 열면 서울이 물바다가 될 뿐 아니라 심지어 63빌딩도 물에 잠긴다며, 공포분위기 조성에 열을 올렸다. 신문·방송 등 대중매체는 연달아 ‘특집’을 쏟아내며 국민들에게 수몰(水沒)의 위기의식을 부채질하기에 바빴다. 또한 그 무렵 건국대학교에서 열린 대학생들의 연합집회를 용공으로 몰아 대량 구속하는 가 하면,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설을 퍼뜨려 반공무드를 고조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을 반대하는 관제데모는 압권이었다.
바로 그런 비정상 분위기를 타고 전북대에서 황당한 TV쇼가 벌어졌다. 11월12일 오후 4시경 교련을 한다고 제1학생회관 앞에 학생들을 모아놓고서 거기에 호우회 회원들을 투입시켜 금강산댐 규탄대회를 하게 하고, 미리 와 있던 KBS와 MBC의 TV카메라가 이 장면을 찍는 것이었다. 교련시간이 난데없이 금강산댐 규탄대회로 돌변한 데 대하여 학생들은 격분하기 시작했다.
정도상군은 마침 1987년 총학생회장 선거와 관련된 홍보업무 준비를 하다가 분식집에 가서 점심을 때우고 학교로 들어오던 길에 그 장면을 보고 이상히 여긴 나머지 현장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겨우 열 명 안팎의 호우회 회원들이 금강산댐 규탄 구호를 외치는데 교련 나온 학생들이 들러리로 이용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군은 그날 아침 낯익은 안기부원이 학군단 건물에서 나오는 것을 본 생각이 났다.
흥분한 학생들 중에서 “카메라 뺏어라”는 고함이 터져나왔다. 그 와중에 KBS 기자는 교련 교관의 엄호를 받으며 현장을 빠져나갔고, MBC 기자는 학생들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학생들은 화를 못 참고 MBC 기자를 발로 차고 카메라를 뺏으려고 했지만 그 기자는 겁먹은 표정을 하고서도 카메라를 뺏기지 않으려고 팔로 감싸고 있었다.
정군은 마침 총학 총무부장이 나타났으므로 그에게 현장을 맡기고 나서, MBC 카메라 기자를 데리고 총학생회 사무실로 갔다. 그는 학생들의 난폭한 언동을 제지하면서 기자를 어르고 달래어 필름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 소설가이기도 한 정도상은 오랫동안 통일운동에 힘을 쏟아 왔다. 최근에는 소설집 <모란시장 여자>를 펴내고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 ||
“일단 총장님은 보내드리자”는 학생과장의 간청을 밀쳐내며 정군은 말했다. “전국에서 최초로 전북대학교 학생들이 금강산댐 규탄대회를 열었다고 방송에 나가면 좋을 줄 알았어요? 우리 학생들을 그렇게 만만하게 보면 안됩니다.”
총장은 차에서 내려 걸어서 대학본부로 갔고, 총학생회장 김순석군이 현장에 나타나 일장 연설을 하였는데, 얼마 후 총장 승용차가 불타기 시작했다. 이미 어두워진 밤하늘에 불기둥이 솟았다.
나중에 여러 학생들이 검거되었다. 정군이 경찰에 붙들려가 보니, 이미 꾸며진 조서에는 정군이 총학생회장 김군과 함께 총장 차 앞에 있다가 차를 전복시키고 불을 지른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게 아니라고 주장해도 소용이 없었고, 검찰도 그대로 덮어씌웠다.
해가 바뀌어 1987년 2월21일 첫 공판이 열렸다. 학생들로 가득 찬 법정 안은 구호와 노래 소리로 떠나갈 듯했다. 재판이 시작되자 총학생회장 김순석군이 피고인석과 방청석을 향하여 인사를 하더니 자못 웅변조로 말했다.
“여기는 심판받기 위해서 나온 자리가 아니다. 지금의 법률은 기만적이다.”
학생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공소사실에는 1986년 11월4일 학생의 날 기념행사, 같은 달 13일 전태일열사 16주기 추도식 등 학생들의 행사가 집시법위반으로 얹혀 있었다. 심리를 끝낸 지 일주일 만에 내려진 1심 판결에서 김순석을 제외한 7명의 피고인들은 형 집행유예로 석방되었고, 김순석군은 고법 판결로 뒤늦게 석방되었다.
피고인 중에는 아버지가 현직 경찰관으로 근무하는데도 시위에 적극 나섰다가 구속된 학생이 있어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 정도상군은 출감 후 지금까지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면서 통일운동의 현장에서 열정을 쏟고 있다. 금강산댐을 이용한 ‘북한의 수공(水攻)위협’이 전두환 정권의 ‘조작쇼’였음은 머지 않아서 밝혀진 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