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지켜야 할 우리 유산 [25] 라임이 있는 가락, 억압을 이겨내는 춤과 놀이의 세계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왜군을 교란하기 위해 강강술래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강강술래는 한가위나 대보름 밤에 마을 처녀들이 공터에 모여 손을 맞잡고 둥그렇게 원을 그리어 돌며 노래와 놀이를 즐기는 민속예술이다. 노래하고 뛰며 원을 돌다가 힘들면 기와 밟기, 덕석(멍석)몰이, 쥐잡기놀이, 청어 엮기 등 농촌이나 어촌 생활을 장난스럽게 묘사한 놀이를 곁들이는 게 특징이다. 그 중 하나인 남생이놀이를 예로 들자면, 한 사람이 원 안으로 들어가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면 그 다음 사람도 들어가 앞사람의 흉내를 내는 식으로 흥을 돋운다. 강강술래 노래는 한 사람이 앞부분을 선창하면, 여러 사람이 이를 이어받아 뒷소리(합창)를 하는 방식으로 불린다. 강강술래는 노래에서 거듭 반복되는 ‘강강술래’라는 후렴구에서 이름이 유래했지만, 그 정확한 의미는 알려져 있지 않다.
1947년 2월 20일자 ‘경향신문’은 ‘호남의 풍속 강강술래’라는 칼럼에서 강강술래를 한자가 아니라 옛 방언의 합성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장흥, 강진 등지에서 들을 수 있는 둘레, 곧 원(圓)이란 뜻의 시골말 ‘강’과 ‘돌아’라는 뜻의 시골말 술레(래)가 합쳐진 단어라는 것. 즉 강강술래는 ‘둘레로 둘레로 돌아’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근대 한국의 국악인이자 음악인인 함화진은 자신의 저서 ‘조선음악통론’에서 강강술래가 마한 때부터 내려온 노래로 추측된다고 적었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국내 문헌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고대 중국의 문헌에 따르면 약 2000년 전에 존재했던 마한의 농촌 풍습에서 강강술래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강강술래 놀이가 풍작과 다산을 기원하며 원을 그리고 돌며 놀던 오래 전 농경문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왜군을 교란하기 위해 강강술래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장군이 주둔지 인근의 부녀자들로 하여금 무리를 지어 모닥불 주위를 돌면서 강강술래 노래를 부르게 했고, 이로 인해 왜군이 불빛 아래 수없이 가물거리는 그림자들을 보고 장군의 병력을 과대평가하게 됐다는 내용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사이트(ich.unesco.org)의 강강술래 홍보 영상(문화재청 제작)에도 이 같은 일화가 소개돼 있다.
오래전 한국의 전통사회는 남성 중심이었으며, 젊은 여성들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밤에 외출하는 것이 거의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추석이 되면 젊은 여성들은 강강술래를 통해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그간 쌓여 있던 ‘울분’을 표출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여성들에게 강강술래는 또 다른 해방구였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강강술래 노래 가사에는 풍자적이거나 사회비판적인 내용이 자주 담겼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 쓰인 가사에는 일제에 대한 한국인의 저항의식이 반영되기도 했다.
활활 타는 달집 아래 강강술래. 사진은 해운대동백강강술래단의 공연. 연합뉴스
물론 강강술래를 생활체조와 접목시키는 등 일상의 민속예술로 보급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비만 여성의 다이어트를 위한 대체 요법이나 노인의 웰빙을 강화하는 운동으로서 강강술래를 응용하는 방안도 탐구되고 있다. 그러나 청소년을 대상으로는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강강술래를 부분적으로 익히도록 하는 게 고작이다. 청소년과 젊은층이 좀 더 친숙하게 강강술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저 건너 큰 산 밑에, 강강술래 / 동백 따는 저 큰 아가, 강강술래 / 앞돌라라 인물 보자, 강강술래 / 뒷돌라라 태도 보자, 강강술래 / 인물태도는 좋다마는, 강강술래 / 눈주자니 너 모르고, 강강술래 / 손치자니 넘이 알고, 강강술래 / 우리 둘이 일허다가, 강강술래 / 해가 지면 어쩔거나 강강술래.’
진도에서 불려온 강강술래 가사 중 하나다. 나물 따다 맘에 드는 상대를 발견했는데, 행여 남들이 눈치 챌까봐 설레는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심정을 익살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상당수 강강술래 노래 가사에는 젊은 층에게 친숙한 랩처럼 라임(압운)이 존재한다. 풍자적이거나 사회비판적 성향을 띠는 것도 랩과 흡사하다. 그렇다면 ‘라임이 있는 강강술래 가사 쓰기 경연’ 같은 것은 어떨까. 이런 작은 유사점들을 찾아 응용해 보면, 어쩌면 젊은 층이 강강술래 문화와 좀 더 친해지는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자료협조=유네스코한국위원회, 참고=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