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 장려했다가 돌연 폐지’ 등 어처구니없는 정책 속 도축되고 중성화됐던 곰들의 슬픈 이야기
1.96㎡(약 0.59평)에 갇힌 사육곰 2마리.
6일 오전 11시 ‘일요신문’은 대한민국의 막내 사육곰 3마리를 찾았다. 이 사육곰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의 한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었다. 농장 입구에 들어서자 전방 30m 앞으로 철제 사육곰 우리가 펼쳐졌다.
가로세로 각 140㎝ 철장 우리 안에는 사육곰 1마리 혹은 2마리가 생활하고 있었다. 철장 우리에는 위아래로 수로 2개가 위치했다. 곰이 서서 입을 댈 수 있는 높이의 수로에는 곰이 마실 물이 흘렀다. 다른 하나는 철장 바닥과 연결돼 곰의 소변받이 역할을 했다. 곰 1마리는 대변과 소변이 뒤섞인 철장 바닥에 엎드려 소변받이에 연신 혀를 집어 넣었다 뺐다. 온몸에는 젖은 분변 자국이 가득했다. 또 다른 철장 안에서는 곰 2마리가 연신 제자리를 돌거나 특정 위치만 계속 반복해서 돌아다녔다. 또 다른 곰 1마리는 자신이 싼 대변 앞에서 무기력하게 엎드려 미동도 하지 않았다.
농장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우리 뒤쪽에는 또 다른 철장이 설치돼 있었다. 막내 사육곰 3마리의 보금자리였다. 이 농장에서 키우고 있는 사육곰 49마리 가운데 3마리는 2015년생이다. 환경부 산하 환경청이 관리하는 대한민국 공식 막내 사육곰이다. 막내 사육곰 3마리는 취재진을 보자마자 철장 위에 매달렸다. 소리를 내거나 계속 주둥이를 철장 사이로 내밀었다.
얼마 뒤 진정한 막내 사육곰 1마리는 철장 바닥으로 내려와 이리저리 배회했다. 진돗개 정도의 중형견 크기였다. 막내 사육곰은 앞다리와 등 주변에 탈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곰의 상징인 배나 볼따귀는 찾아볼 수 없었다. 농장주는 “하루에 그래도 3만 원어치씩 근처 농협에서 사온 고기와 과자 가루를 먹이고 있다”고 말했다.
분변이 섞인 물에 연신 혀를 대는 사육곰.
2015년에 태어난 이 사육곰 3마리가 국내 사육곰 가운데 막내로 불리는 이유는 정부가 사육곰 산업의 공식 폐지를 선언한 까닭이었다. 폐지가 결정되자 환경부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사육곰 중성화 수술 사업을 시행했다. 개체수 확장을 막는 결정이었다. 막내 사육곰 3마리는 중성화가 시행되기 직전 태어났다.
환경단체와 시민단체는 연례행사처럼 사육곰 문제를 들고 일어나며 농가를 향한 비난은 날이 갈수록 증폭된다. 동물 학대라 비난하는 이도 많았다. 하지만 수면 아래 정부의 정책을 잘 따져 보면 정부의 갈지자 정책 행보가 되레 이런 구조를 만들어 버린 수훈 갑이었다. 동물 학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정책을 실행하고 있었다.
한국의 사육곰 역사는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 정부는 재수출용으로 곰 수입과 사육 및 수출을 장려했다. 하지만 4년 만에 정책을 바꿔 버렸다. 멸종위기종 보호 여론이 일었던 1985년 정부는 곰 수입을 금지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당시 정부는 국제 여론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자신의 분변 앞에서 무기력하게 고개 숙인 사육곰.
당시 국내 사육곰 개체수는 약 1400마리까지 늘어나 있었다. 사육곰을 수출하는 정책이라도 실행했다면 좋았을 테지만 정부는 1993년 7월 사육곰의 수출까지 막아섰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인 사이테스(CITES)에 가입했던 까닭이었다. 워싱턴 협약으로도 불리는 사이테스의 목적은 멸종위기종의 불법거래나 과도한 국제거래로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보호다.
정부는 심장이 아프자 심장을 없앨 궁리를 했다. 멸종위기종을 보호하자고 사이테스에 가입한 다음 곰의 빠른 멸종을 주도했다. 1999년 곰 도축이 합법화됐다. 24살 이상 곰에 한해 웅담 채취용 도축을 승인했다. 정부는 고삐를 단단히 쥐었다. 2005년 도축 승인을 10살 이상 곰으로 완화했다. 2014년 쯤부터 남아있는 사육곰 총 967마리의 중성화를 시작했다. 수곰의 고환을 제거했고 암콤의 자궁을 복강경으로 지졌다. 2017년 기준 628마리 남았다. 남아 있는 사육곰 628마리 가운데 200여 마리는 아직 10살 미만이다. 55마리는 5살도 안 됐다. 이 농장의 막내 사육곰 3마리는 2015년생이다. 7년을 더 버텨야 죽을 수라도 있다.
농가는 어이가 없었다. 대한뉴스에서까지 대대적으로 장려했던 사육곰 산업을 아무런 대책 없이 없애 버린 탓이었다. 곰에게 들어가는 사료는 1년에 1000만 원 가까이 든다. 10년을 키워서 쓸개를 떼다 팔아도 남는 게 없다. 곰 고기와 사골 판매 역시 막힌 까닭이다. 환경부는 곰을 식품원료로 분류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곰 고기와 사골을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등재해 놓지 않았다. 가축처럼 키우라고 장려해 놓고 쓸개만 따서 팔게 만든 정부였다. 결국 농가는 사육비용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했다. 두 집단의 이기심은 곰에게 처절한 환경을 제공했다.
우리나라 공식 막내 사육곰
정부는 대외적으로 멸종위기종 관리에 힘쓰고 있다. 2004년 시작한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에는 2015년까지 약 170억 원이 쓰였다. 개체수가 50마리를 넘어섰다고 정부는 홍보자료를 뿌렸다. 마리당 5억 원 가까이 쓰인 셈이었다.
농가는 3000만 원쯤 주고 사육곰을 전량 매입해 관리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나섰다. 남은 사육곰 628마리 전체를 매입하려면 180억 원쯤 든다. 지리산 반달가슴곰 50여 마리에 투입됐던 정도의 돈이다.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대안으로 도축연한 10년을 없애 달라는 재요구가 올랐다. 모두 무시당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미 지원할 건 다 해서 더 이상 지원할 계획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2017년 2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곰의 접점을 찾았던 문재인 캠프.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마스코트로 곰을 사용했다. 1년 앞선 2017년 2월 27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 선거캠프는 캠프 이름을 ‘더문캠’으로 짓고 상징 이미지는 곰을 쓰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예종석 홍보본부장과 손혜원 홍보부본부장은 “‘문’ 자를 180도 뒤집으면 ‘곰’이 된다. 긴 싸움 끝에 결국 이기고 마는 우직한 이미지의 곰은 승리를 쟁취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며 “문 전 대표는 곰과 같은 꿋꿋한 이미지로 한 길을 간다는 의미에서 이 캐릭터를 쓰기로 했다”고 이야기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 선거캠프에서 캐릭터로 사용했던 곰은 귀가 2개 눈이 2개 코가 1개 콧구멍이 2개 다리가 4개다. 자세히 안 보아도 예쁘다. 오래 안 보아도 사랑스럽다. 사육곰도 그렇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사육곰 농장에서 살고 있는 반달가슴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