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지기 이름도 잘 못 부르고, 작년에 줬던 회고록 또 선물…전문의 “정황상 중등도 추측”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 일요신문 DB
정신과 전문의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의 건강은 치매가 이미 꽤 진행된 상태로 추측된다. 익명의 정신과 전문의는 “환자를 직접 보고 진단을 내려야 정확하게 나오겠지만 정황만 봤을 때 중등도 정도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치매가 진행됐다고 보인다”며 “보통 기억을 저장하는 데 장애를 겪는 기억회상능력 저하에서 시간, 장소, 사람을 인식하는 지남력 저하로 이어진다. 날짜와 요일을 헷갈려 하며 차차 연도와 계절을 인식하지 못하고 장소를 가리지 못하게 된다. 사람을 못 알아보는 수준까지 이르게 된다. 또한 사물이나 사람 명칭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걸로 봐서 전반적인 인지 능력을 꽤 상실한 것 같다”고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해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사격 사실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사탄’이라고 표현해 죽은 이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8월 27일은 첫 재판일이었지만 전 전 대통령은 법원에 출석하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 변호인은 이날 “전 씨가 알츠하이머로 단기기억 상실 상태에 있고 건강 때문에 주변에서 장거리 여행을 말렸다. 불가피하게 출석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치매의 원인은 크게 알츠하이머병이라 불리는 뇌신경 퇴화와 뇌혈관 손상으로 발생하는 혈관성 치매 등으로 나뉜다. 가장 흔한 증상은 알츠하이머병이다. 전체 치매의 약 60%를 차지한다.
첫 재판일에 하루 앞서 이순자 여사는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입장문을 낸 적 있었다. 입장문에서 이 여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공판 출석은 법리 문제를 떠나 아내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난감하다”며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전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의료진이 처방한 약을 복용해 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광주지법에 대학병원의 관련 진료기록을 제출하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현재 건강 상태를 알려줬다”며 “전 전 대통령의 현재 인지 능력은 회고록 출판과 관련해 소송이 제기돼 있는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들어도 잠시 뒤에는 설명을 들은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했다.
발병 배경에 대해서는 “1995년 옥중에서 시작한 단식을 병원 호송 뒤에도 강행하다 28일 만에 중단했는데 당시 주치의가 뇌세포 손상을 우려했다”며 “2013년 검찰이 자택 압수수색을 벌이고 일가 친척·친지들의 재산을 압류하는 소동을 겪은 뒤 한동안 말을 잃고 기억상실증을 앓았다. 그 일이 있은 뒤 대학병원에서 알츠하이머 증세라는 진단을 받게 됐다”고 전했다.
이 여사는 “그동안 적절한 치료 덕분에 증세의 급속한 진행은 피했지만 90세를 바라보는 고령 때문인지 근간에는 인지 능력이 현저히 저하돼 방금 전의 일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이런 정신건강 상태에서 정상적인 법정 진술이 가능할지도 의심스럽고 그 진술로 형사소송의 목적인 실체적 진실을 밝힌다는 건 더더욱 기대할 수 없다”고 일렀다.
이어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공개된 장소에 불려 나와 앞뒤도 맞지 않는 말을 되풀이하고 동문서답하는 모습을 국민들도 보기를 원치 않을 것”이라며 “정상적 진술과 심리가 불가능한 상황임을 살펴볼 때, 또 시간 맞춰 약을 챙겨드려야 하는 사정 등을 생각할 때 아내 입장에서 왕복에만 10시간이 걸리는 광주 법정에 전두환 전 대통령을 무리하게 출석하도록 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알츠하이머병을 불출석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나오지 않아 신원을 확인하는 인정신문, 공소 사실 확인 등 정식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고 재판을 연기했다. 재판에 불출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출석할 것을 거듭 요구했다. 8월 28일 광주지법에 따르면 법원은 이번 사건 첫 공판기일이 끝나고 전 전 대통령에게 다시 소환장을 보냈다. 다음 공판기일은 10월 1일 오후 2시 30분 광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형사8단독 김호석 판사 심리로 열린다.
신군부 인사는 다음 공판기일에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판 출석은 어려울 거라고 전망했다. 그는 “전 전 대통령은 지난해 단기적인 기억도 잘 못하는 상태에서 지금은 이름도 제대로 기억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 법정에 가도 제대로 된 진술을 하지 못할 것 같아 출석은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과 관련해 5·18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의 개입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 발간에 앞서 북한군의 개입은 없었다고 말한 뒤 회고록에는 지만원 박사의 북한군 개입설을 지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최근 치매 때문에 기억력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의혹부터 대필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에 대해 신군부 인사는 “5·18 때 북한군이 개입했는지 여부는 증거가 없고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 신군부 내부에서는 북한군 관련 별다른 이야기가 오고 간 게 없었다. 다만 북한 방송에서 나오는 광주의 상황 등을 듣고서 몇 번을 즉시 확인해 봤는데 내가 당시 대령 신분으로 상시 보고 받는 내용보다 빠르고 정확했다”고 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