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 명함 내밀고 사업 투자 권유…‘은밀한 계약’ 많아 수사 의뢰도 못해
2018년 7월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 판문점에서 바라본 북한 판문각의 모습. 북한 경비병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중국 파견 근무 중인 한 대기업 임원은 최근 개인적으로 투자를 했다가 낭패를 봤다. 현지에서 알게 된 한 중국인 사업가와 함께 계약을 맺은 게 화근이 됐다. 중국에서 열차를 타고 출발해 북한의 개성과 평양 등을 1박 2일간 관광하고 돌아오는 사업이었다. 이 임원은 계약금과 홍보비 등으로 2억 원을 투자했다. 이를 주선한 중국인은 3억 원을 보탰다. 그런데 계약했던 북한 측 인사가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고 했다. 이 임원은 구체적인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회사 일에 도움을 준 중국인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였다. 그가 한 북한 관료를 데리고 왔다. 대사관 직원이라고 했고, 명함에도 직책이 적혀 있었다. 그래서 의심하지 않았다. 북한 관료라고 했던 인사가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다며 투자를 제안했다. 요즘 중국에서 북한 관광이 인기가 높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사비 2억 원을 투자했다. 그런데 돈을 준 후 연락이 되지 않았다. 백방으로 알아보니 북한 대사관에 그런 직원은 없었다. 사기를 당한 것 같은데 어디다 하소연할 데도 없는 상황이다.”
국내와 중국을 오가는 한 사업가도 비슷한 일을 당해 속을 앓는 중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석탄 등 북한 자원을 싸게 사들이는 계약을 맺었다. 북한 고위층과 선이 닿는다고 주장했던 한 브로커를 통해서다. 브로커는 이 사업가에게 “경제 제재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너도 나도 북한 자원을 수입해서 팔고 있다. 나중에 제재가 풀리고 남북 경협이 시작되면 하고 싶어도 못할 수 있으니 지금부터 미리 해둘 필요가 있다”며 투자를 제안했다. 그러면서 자원 개발 등에 필요한 자금을 요구했다.
브로커는 북한 고위층들과 찍은 사진 등을 보여주며 자신의 인맥을 과시했다고 한다. 이 사업가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와 주고받은 문자 등을 공개했는데, 브로커가 보낸 메시지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북한 측 인사가 언급돼 있었다. 사업가는 고민 끝에 3억 원을 투자하기로 결심하고, 이를 가방에 담아 현금으로 전달했다. 그 후 브로커와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가 알려준 숙소는 이미 정리된 상태였다. 돈을 받자마자 잠적한 것이다. 이 사업가는 “북한으로 들어가 버린 것 같아 찾을 방법이 없었다. 엄밀히 따지면 밀수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수사기관에 말할 수도 없다. 그냥 돈을 떼인 것”이라고 했다.
한 개인 투자자는 브로커에게 속아 평양 공연 사업에 투자했다가 거액을 날렸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중국 현지에서 열린 투자 설명회에 참여한 뒤 계약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설명회엔 북한 측 관료라고 주장한 인물이 공연과 관련해 1시간가량 자세하게 브리핑을 했다. 그 투자자뿐 아니라 또 다른 참석자들이 10여 명 있었다. 이 투자자는 “공연을 보겠다는 중국인을 이미 수만 명 모집했다며 자세한 내역을 보여줬다. 공연만 하면 돈을 버는 구조라고 했다”면서 “북한 관료가 직접 말을 하니 신뢰가 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다. 그 넓은 중국 땅에서 어떻게 찾겠느냐”고 했다.
중국에서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은 브로커들이 건넨 명함엔 대사관 등 북한 관료 직함이 적혀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 더 속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또 일단 돈을 받고 사라지면 브로커를 찾을 길이 없을 뿐 아니라 피해를 보상받을 수도 없다고 했다. 수사를 의뢰하기도 쉽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이는 중국 현지에서 벌어진 일이고, 또 브로커들이 북한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과 연관이 있다. 계약 자체가 수면 아래서 ‘은밀히’ 이뤄진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투자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특히 남북경협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를 노린 브로커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또 다른 대기업 임원은 “북한 건설 사업과 관련해 우리 쪽 중국 담당자가 현지에서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북한 측 고위급 관료의 측근이라고 했다. 그는 남북경협을 앞두고 미리 계약을 해두자고 했다. 솔깃한 측면도 있긴 했지만 논의 끝에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귀띔했다. 그 임원은 “최근 다시 확인해보니 그 고위급 관료 측근이라는 인물은 브로커일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계약을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덧붙였다.
남북·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에 투자를 하고 싶어 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앞서의 사례들을 감안하면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로또’를 노렸다가 자칫 ‘쪽박’을 찰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산 석탄 밀수입 사태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북한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투자는 변수가 워낙 많아 리스크가 높다고 입을 모았다. 사정당국 고위 인사는 “중국 현지에서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북한 측 인물이 접근해오면 십중팔구 브로커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면서 “대부분 불법적인 계약이 많으니 일단 피해야 한다. 대사관이나 국정원 등 관련 기관에 사전 확인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