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최고위층 친박 원로들 통해 ‘상고법원 반대’ 우병우 교체 민원 넣었다 ‘부메랑’
우병우 전 민정수석. 최준필 기자
양승태 대법원이 재판을 거래하면서까지 얻고자 했던 것은 상고법원 설치였다. 2015년 후반기 국회통과를 목표로 양승태 측 판사들이 여권 실세들, 국회 법사위원, 청와대 인사들을 접촉해 설득 작업에 나섰다. 그중에서도 핵심 공략 대상은 청와대였다. 사법권 남용의혹 특별조사단이 공개한 문건엔 ‘상고법원 도입에 대한 최종 정책 결정은 VIP의 몫, BH(청와대) 입법 협조 획득이 절대적’이라는 내용이 여러 번 적혀있다.
그러나 양승태 대법원 앞엔 걸림돌이 있었다. 바로 2015년 1월 민정수석으로 발탁된 우병우였다. 우 전 수석은 상고법원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었다. 2015년 3월 26일 작성된 ‘상고법원 BH 대응전략’ 문건엔 이러한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사법부의 공식 BH 접촉창구인 민정수석실의 협조 획득이 불가능하다며 검사 출신인 우 전 수석의 반대를 그 이유로 들었다.
이 문건 속 ‘민정수석의 영향력 약화를 위한 입체적 대응전략 구사 필요성’이라는 항목엔 우 전 수석을 공략하기 위한 방안이 담겼다. 우 전 수석 설득 정면 돌파는 불가능하니 또 다른 비중 있는 인사들을 우회 접촉하는 게 골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병기 비서실장, 우 전 수석은 검찰총장 출신의 이명재 민정특보가 각각 맡아 설득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주호영 윤상현 정무특보를 활용해야 한다고도 했다.
문건엔 누가 어떻게 이들을 접촉해야 하는지 자세한 내용까지 나와 있었다. ‘개인별 맞춤형 접촉’이라는 문장도 명시돼 있다. 윤상현 정무특보의 경우 ‘VIP에게 누나라고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라는 소문이 돌 만큼 가까운 사이’라는 평과 함께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이 담당한다고 적혀 있었다. 우 전 수석 대신 또 다른 대통령 측근들을 통해 상고법원 설치를 관철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법원은 우 전 수석에 대한 존재감을 그리 높게 평가하진 않았다고 한다. 우 전 수석이 반대하더라도 얼마든지 상고법원 설치가 가능했을 것으로 봤다는 얘기다. 이러한 인식은 조금씩 변해갔다. 2015년 7월 28일 작성된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BH 설득방안’ 문건에 따르면 우 전 수석은 ‘비서실장보다 더 자주 VIP를 독대하고 사정 정국 조성에 막후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그려졌다. 다만, 법조 현안에 있어선 이명재 민정특보에 비해 주도권을 행사하지는 못하는 상황이라고 봤다.
대법원이 우 전 수석에 대한 회유책과 함께 강경 대응을 병행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한 법원 관계자는 “우 전 수석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사법연수원 2기다. 우 전 수석(19기)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 인사들 대부분 우 전 수석보다는 한참 선배다. 까마득한 후배 눈치 보는 것도 그런데 대놓고 퇴짜를 맞으니 얼마나 화가 났겠느냐”면서 “우 전 수석 버릇을 가르쳐주자는 얘기까지 나왔었다”고 귀띔했다.
대법원 고위 관계자들은 친박 실세 정치인들을 만나 우 전 수석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전달하면서 민정수석 교체 필요성을 언급했다고 한다. 앞서의 법원 관계자는 “우 전 수석이 여당 주류인 친박 정치인들조차 무시하는 언행을 하고 있다는 식의 얘기를 흘렸다. 우 전 수석을 견제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사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관계자도 “(상고법원 도입을 반대하는) 우 전 수석을 내치기 위해 대법원 최고위급 관계자들이 친박 원로들에게 민원을 넣었다는 진술이 나왔다”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친박 전직 의원도 비슷한 사례를 들려줬다. 대법원의 집중 로비 대상이었던 법사위 출신이기도 한 이 의원은 “평소 알고 지내던 판사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우병우 얘기가 나왔다. (우 전 수석이) 정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대통령 눈과 귀를 가리는 인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땐 왜 그러는지 알지 못했는데 최근에서야 상고법원 도입 문제 때문인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몇몇 친박 원로들이 우 전 수석 교체를 건의했지만 박 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법원은 오판을 했다. 우 전 수석 입지를 과소평가한 것이다. 이는 상고법원 도입 실패로 이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끝내 재가를 해주지 않았고, 청와대 ‘오더’를 받은 여당 의원들은 상고법원 관련 법안에 등을 돌렸다. 여기엔 우 전 수석 조언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우 전 수석을 내치려 했던 게 부메랑으로 돌아왔을 가능성도 높다. 대법원 내부에선 “우병우를 끝까지 설득했어야 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근혜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친박 정치인의 말이다.
“우병우는 민정수석으로 발탁된 직후부터 법률 분야뿐 아니라 주요 현안에 있어서 박 전 대통령이 가장 의존하고 믿는 참모였다. 이명재 특보로 인해 역할에 제한이 있을 것이라고 본 대법원의 분석은 틀렸다. 또 친박 실세들을 동원해 우 전 수석을 축출하려 했던 시도 역시 오히려 화만 불렀던 것으로 안다. 당초 우 전 수석은 상고법원 자체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내놓다가 언제부터인가 대법원 판사들의 행태를 꼬집기 시작했다. 주요 기관 인사를 좌지우지했던 실세 민정수석으로서 대법원 판사들이 자신을 흠집 내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있느냐.”
우 전 수석은 임명 직후부터 박 전 대통령의 남다른 신뢰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민정비서관 시절 이른바 ‘정윤회 문건’을 잡음 없이 처리해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왕실장’으로 통했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참모 3인방(이재만 정호성 안봉근)의 든든한 지원사격 덕분이었다. 3인방이 정윤회 문건으로 입지가 좁아든 상황에서 우 전 수석은 청와대 ‘왕수석’으로 불리며 최고 실세로 급부상했다. 이는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때 열린 청문회 등을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청와대 내 권력 지형을 꿰뚫어 보는 데 실패했다. 2015년 11월 대법원이 만든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을 살펴보면 우 전 수석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우 전 수석 성향에 대해 자기 소신이 강하고 청탁이 통하지 않는다고 썼다. 여기서 언급된 청탁은 상고법원 로비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BH 내 입지’ 항목엔 우 전 수석이 VIP의 핵심참모일 뿐 아니라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다고 적혀 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우 전 수석의 반대를 번복시킬 합당한 명분과 계기 또는 실효적 압박카드가 없으면 부정적 입장 선회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상고법원 도입의 ‘키’를 우 전 수석이 쥐고 있음을 인정한 대목이다. 법사위 출신의 친박 전직 의원은 “우 전 수석을 제대로 공략했더라면 아마 상고법원 도입은 성공했을 수도 있다. 우 전 수석이 박 전 대통령을 설득할 유일한 창구였는데 이를 간파하지 못했고, 다른 라인에 헛된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