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사업 양대산맥인 산업은행·수출입은행 엎치락뒤치락…기업은행, 개성공단 중소기업 전문은행 ‘역할론’ 가세
대북사업과 관련해 먼저 행동에 나선 쪽은 산업은행이다. 산업은행은 최근 실시된 하반기 정기인사에서 기존 ‘통일사업부’를 ‘한반도신경제센터’로 확대 개편했다. 이를 통해 인력을 보강하는 것은 물론 센터 내에 ‘남북경협연구단’도 신설해 북한 관련 연구 등을 맡길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는 남북경협과 북한개발금융 등 ‘한반도 신경제’ 구상에 맞춰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남북경제협력을 역점사업으로 꼽았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산업은행은 그간 통일사업부를 중심으로 북한 경제와 산업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으며 ‘남북경협’을 역점사업으로 삼은 뒤 상황을 예의주시해 왔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 5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다음 역점사업 가운데 하나는 남북 경제협력”이라며 “이번 가을에는 평양에 가보고 싶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겨 눈길을 끌기도 했다.
산업은행이 이처럼 남북경협 아젠다를 선점하고 나서자 수은도 서둘러 반격에 나섰다. 수은은 사실 그간 대북사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왔던 곳이다. 1991년부터 30년 가까이 ‘남북협력기금(IKCF)’을 운영 중이며 남북 간 교류가 잠시 끊겼던 시기에도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피해를 입은 기업에 보험금을 지급하는 등 ‘남북협력본부’의 기능을 유지해 왔다. 은성수 수은 행장은 9월 초 공식석상에서 “대북 경제협력과 개발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수행하겠다”며 남북경협에 앞장설 것임을 역설하며 사실상 산은과 경쟁을 선언했다.
남북경협 관련 부문을 강화하는 움직임도 시작했다. 북한·동북아연구센터에 박사급 인력 2명을 충원했고 이달 발표한 ‘비전 2030’에도 수출금융, 대외경제협력기금(EDCF)과 함께 남북협력기금을 비중 있게 다뤘다. 두 국책은행이 남북경협을 두고 보이지 않는 경쟁에 나선 셈이다.
눈길을 끄는 점은 공교롭게도 남북경협에 힘을 싣는 두 국책은행의 수장이 나란히 금융위원장 하마평에 올랐다는 것이다. 이동걸 회장과 은성수 행장은 오랜 현장 경험과 두터운 정계 인맥이 조명을 받으면서 지금까지도 ‘1순위 금융위원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 회장의 경우 STX조선, 금호타이어, 한국GM 등 기업 구조조정 이슈에서 지켜온 ‘원칙론’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고 은 행장은 국책은행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왔다는 점에서 ‘적임자’로 여겨지고 있다. 대북사업이 지닌 상징성과 높은 잠재력을 고려한다면 남북경협 과정에서 보여줄 두 수장의 성과가 사실상 ‘후임 금융위원장 레이스’의 전초전 성격을 띠지 않겠냐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은성수 수출입은행장은 그동안 수출입은행이 대북사업의 중추적 역할을 해온 만큼 향후 남북 경제협력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이와 관련, 은성수 행장은 “남북협력기금만으로 북한의 철도·도로와 같은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면서 “남북협력기금 외에 국제사회의 공적개발원조(ODA) 자금 등이 활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남북경협에서 수은과 산업은행 각각의 역할이 있다”면서 “기관 사이에 칸막이를 두지 말고 역량을 모으면 국민의 부담 없이 북한 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두 국책은행이 남북경협 주도권을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와중에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던 IBK기업은행이 최근 활발한 행보를 보이기 시작해 시선을 끌고 있다. 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은 지난 1일 열린 창립 57주년 기념식에서 남북경협시대 중소기업 전문은행인 기업은행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김 행장은 이날 “개성공단 입주 기업의 51%가 IBK의 주거래기업”이라며 “IBK가 남북경협시대를 선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이 남북 경협에 참여해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든든한 길잡이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기업은행은 ‘통일금융준비위원회’를 재가동하고 개성공단 지점 설치를 추진하는 등 남북경협 본격화에 대비하기로 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에 대한 물밑 지원 기능도 강화한다. 지난 5월 IBK경제연구소 내 북한경제연구센터를 신설하고 북한 연구 기능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업은행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사무소를 교두보로 해 북한 인근 지역 조사도 강화하고 있다. 김 행장의 이 같은 행보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책은행으로서 소임을 다하겠다는 의지가 함축돼 있다. 김 행장은 “IBK의 존재가치는 중소기업 육성을 ‘책임’지는 데 있다”는 역할론을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개성공단 입주 기업의 절반 이상인 51%의 주거래은행이 기업은행이다. 또 기업은행과 거래하는 상당수 중소기업이 남북경협사업 참여 의지가 높다. IBK기업은행 북한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중소기업 200곳 중 49.5%가 남북경협 사업에 참여할 의지가 있다고 응답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중소·중견기업 상당수가 기업은행의 거래처이기 때문에 향후 남북경협에서 기업은행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