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내놓은 ‘잔고·매매 모니터링 시스템’ 미봉책 지적…“재대차거래부터 막아야”
지난 4월 삼성증권 유령주식 배당 사고가 발생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제도 폐지 요구가 빗발쳤지만 금융위원회는 지난 6월 “무차입 공매도는 불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곧바로 골드만삭스의 무차입 공매도 사태가 터지면서 비난과 항의를 자초했다. 개인투자자로 이뤄진 공매도제도개선을위한주주연합 한 관계자는 “무차입 공매도로 불거진 개인투자자 피해에도 금융당국은 방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제출한 ‘무차입 공매도 조치 현황’에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66건 무차입 공매도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한국거래소는 연평균 14곳 증권사가 무차입 공매도 의심 거래를 진행한다고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에 보고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당국이 무차입 공매도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지난 6월 골드만삭스의 공매도 미결제 사태가 발생하면서 금융당국을 향한 무차입 공매도 개선 요구 목소리가 커졌다. 사진은 뉴욕증권거래소 전광판에 골드만삭스 로고가 비치는 모습. 연합뉴스
공매도는 ‘가지고 있지 않은 주식이나 채권을 매도한다’는 뜻으로, 증권 가치가 떨어질 때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 방법이다.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과평가된 주식에 대한 가격 발견 효율성을 높인다는 이점이 있다. 여기서 무차입 공매도란 주식을 빌리지 않은 상태에서 공매도 주문을 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차입 공매도가 주가 하락 등으로 변동성을 키운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00년 금지, 차입 공매도만 허용한다. 금융위원회가 무차입 공매도 불가능을 언급한 이유다.
공매도제도개선을위한주주연합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는 금융당국이 무차입 공매도 사태를 알면서 방관해 왔다고 지적한다. 공매도를 하는 기관투자자가 증권사에 주식을 차입했다고 ‘통보’만 하면, 증권사는 실제 차입 여부를 따져보지 않고 공매도를 중개하는데 금융당국이 이를 몰랐을 리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은 무차입 공매도로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사가 2015년 17개 사에서 2016년 21개 사로 급증하자 과태료 조치를 강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없는 주식’의 거래가 이뤄지는 상황을 막기 위한 제도 개선은 없었다.
국내서 무차입 공매도가 이뤄지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주문전용선(Direct Market Access·DMA)’을 통한 거래로 공매도를 내려는 측은 DMA를 통해 공매도 종목과 수량을 기입하면 끝이다. 여기에 추가로 ‘주식 차입 여부와 해당 물량’을 표시해서 거래소로 매매주문을 내게 돼 있지만, 증권사가 주식에 대한 차입을 확인하지 않고 공매도를 중개해줘도 규정상 문제가 없다. 또 DMA를 통하지 않고 메신저 등을 통해 ‘주식 차입’ 여부를 통보하고 공매도를 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공매도 주문을 중개하는 증권사가 메신저로 통보받은 차입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할 의무나 규정은 없다. 원하면 없어도 팔 수 있는 불법 공매도인 셈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증권사 입장에선 공매도 주문을 낸 쪽이 곧 고객인데, 수수료로 먹고사는 증권사가 주문을 낸 투자자에 차입했냐고 물을 수 없는 구조”라면서 “무차입 공매도는 증권사와 기관투자자 간에 일종의 신용거래인데 무차입 공매도인 것을 알면 증권사가 결제일 전에 대신 주식을 빌려주고 차입 공매도인 것처럼 꾸미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금융감독원이 경실련의 정보공개청구에서 밝힌 무차입 공매도 조치 내역.
금융당국은 최근 중개 증권사가 ‘차입 여부’를 적극적으로 확인하게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강화된 제재를 받도록 하는 대책을 내놨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주식잔고·매매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제재 강화 개정안을 연내 국회에 제출할 예정”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금융당국 대책이 미봉책에 그칠 것이란 지적이 일고 있다. 효과적인 주식잔고·매매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을 위해선 해외 수탁은행으로 넘어간 대차주식 흐름을 파악해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서 국민연금은 대차해 준 보유 주식이 공매도에 쓰인다는 지적에 대해 “주식 수탁은행에 대여거래를 위탁할 뿐 어떤 목적으로 활용됐는지 알 수 없다”고 답했다.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중개 증권사 책임 소지만 따지겠다는 것인데, 고액 거래 일부를 제외하곤 무차입 공매도 여부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공매도제도개선을위한주주연합은 재대차거래부터 막는 게 핵심이라고 제안한다. 재대차거래는 증권예탁원이나 증권사를 통해 대차한 주식을 다른 기관에, 다른 기관은 또 제3의 기관에 대차하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A가 대차한 주식이 B로, B에서 C로 재대차되는 동안 주식 보유가 대차 상태로 유지된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A가 주식 100주를 빌린 후 C에까지 각각 100주를 재대차했다고 가정하면 최초 100주였던 대차 잔고는 최대 300주 공매도로 돌아올 수 있다. 특히 공매도 거래의 약 70%를 차지하는 외국 기관의 경우 최초 대차자 외에 재대차가 얼마나 어떻게 이뤄지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금융투자협회 대차잔고로 실제 대차 주식 총량을 알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주식잔고·매매 모니터링도 소용없어진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낸 대책은 결국 증권사 직원에 의한 수량 확인 의무를 강화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현실성이 결여된 대책으로 불법·탈법 공매도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다”면서 “재대차거래가 ‘뻥대차’와 같은 시세조종 수단으로 전락한 만큼 기관투자자간 주식재대차 제도를 우선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