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재벌이 한치 양보없이 맞붙은 사업체는 충남 당진에 소재한 고합그룹 소유였던 나일론 필름생산 공장. 나일론 필름은 소시지, 맛살 등 가공식품의 포장용재로 이용되는 것으로 국내 시장 규모는 연간 3백억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이 시장은 지난 91년 국내 최초로 나일론 필름업에 뛰어든 코오롱이 전체 시장의 60%, 지난 97년 후발로 진출한 효성이 23%, 나머지는 고합이 12%를 차지하고 있다. 이 시장은 얼핏 보아서는 규모가 크지 않아, 굴지의 재벌이 치열하게 다투는 것이 다소 의아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장은 세계적으로 매년 6% 이상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전체 필름 생산량의 60% 이상이 수출되고 있어 수익률과 시장성도 매우 좋다. 효성과 코오롱이 맞붙게 된 계기는 지난 14일 고합그룹 채권단이 그동안 공개입찰을 통해 매각을 추진해온 당진공장 인수 우선 협상대상자로 코오롱을 선정하면서부터. 채권단의 선정결과가 발표되자 코오롱에 밀려 예비협상자로 추락한 효성이 독과점 문제를 들어 코오롱을 공정위에 제소하고 나섰다.
코오롱이 고합 공장을 인수할 경우 현재의 시장점유율 60%에 12%가 더해져 72%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문제는 결국 법정공방전으로 비화돼 앞으로 코오롱과 효성의 다툼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효성과 코오롱의 법정공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96년에도 두 재벌은 나일론 원료 생산공장인 한국카프로락탐의 민영화 과정에서 한바탕 다퉜다. 당시에는 코오롱이 효성을 공정위에 제소, 현 상황과는 정반대였던 것.
카프로락탐 사건은 양측이 한 발 물러나는 선에서 합의를 보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보인다. 화섬업계 관계자들도 이번 싸움을 “승패에 따라 향후 화섬업계 선점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예민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조 회장과 이 회장은 이 시장의 성장성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당진공장 인수에 총력전을 벌이도록 그룹관계자들을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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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오롱과 효성이 군침을 흘리고 있는 고합 당진 공장 | ||
현재 양측이 대립하고 있는 핵심 사안은 독과점법(공정거래법) 위반여부. 채권단은 코오롱이 효성 등 입찰에 참여한 다른 업체들보다 가격을 높게 제시해 우선협상자로 선정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선정 직후인 지난 17일 효성은 “코오롱의 고합 당진공장 인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상 경쟁제한적 기업결합에 해당한다”며 공정위에 제소했다.
효성은 공정위에 제출한 신고서에서 “코오롱이 인수할 경우 시장점유율이 72%가 돼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추정요건에 해당하고, 시장점유율 2위인 효성과 49%의 차이가 나게 돼, 이번 기업결합은 공정거래법에 저촉된다”고 주장했다. 효성은 또 “인수의향서 제출 당시 코오롱은 4백60억원, 효성은 4백20억원을 적어냈으나, 그 차이가 40억으로 크지 않은 데다 충분한 실사를 거쳐 재산정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음에도 코오롱을 단독으로 선정한 것은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효성의 주장에 대해 코오롱은 ‘현대-기아차’, ‘SK텔레콤-신세기 통신’의 합병을 사례로 들며 반박하고 있다. 코오롱은 “시장점유율은 회사 인수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며 “기업 결합회사의 시장점유율이 높다고 하더라도 해외로부터의 경쟁도입이 가능하거나, 신규사업자 진출이 쉬울 경우에는 제한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코오롱은 “백번 양보해 경쟁제한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이번 기업결합은 예외조항에 해당하기 때문에 인수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코오롱이 주장하는 예외조항인 공정거래법 제7조2항에 따르면 기업결합으로 발생하는 경쟁제한 폐해보다 효율성 증대 효과가 크거나, 해당 기업결합보다 경쟁제한성이 적은 기업결합이 이뤄지기 어려운 경우는 예외에 해당한다는 것. 코오롱 관계자는 “코오롱이 경쟁사인 효성보다 필름사업을 6년 먼저 시작했고, 코오롱-고합의 결합은 세계 2위로 점프하게 되나, 효성-고합은 여전히 마이너에 불과해 경쟁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효성 관계자는 “예외조항이 아니라 기본적인 공정거래법에 저촉될 뿐 아니라, 혹시 예외조항에 해당된다 해도 영세한 식품가공포장업체들을 수요자로 하는 시장에서 독과점의 폐해만 증폭된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또 “코오롱이 내세우는 해외경쟁력 제고의 효과가 나타나기도 어려울 뿐더러, 설령 나타난다 해도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제한성 폐해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신고인인 효성과 피신고인인 코오롱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고, 이들의 자존심 싸움도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결국 고합 당진공장의 인수 여부는 하루 빨리 팔고 싶은 채권단의 희망과는 다르게 공정위의 결정이 나온 뒤에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실권을 쥔 공정위측은 무척 조심스러운 반응. 기업결합과 김석호 과장은 “현재로서는 어느 측 주장이 옳다고 보기 어렵지만, 빠르면 한달 내에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본적인 공정거래법에 저촉되는지의 여부를 밝히는 것이 우선”이라며 “예외조항 인정으로 넘어갈 경우 해당업체는 예외사유에 대한 서류상의 증명을 해야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