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현 총재 등에 업고 호가호위” 집행부 성토…바둑TV·미투 등 현안 미온적 대처도 비판
원로기사 노영하 9단이 한국기원 게시판에 올린 장문의 글을 통해 홍석현 총재를 비롯한 한국기원 집행부를 성토했다.
바둑계 원로기사 노영하 9단이 10월 1일 한국기원 기사게시판에 ‘안녕하십니까 노영하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원고지 87매 분량 장문을 올렸다. 노영하 9단은 “기사의 자존심은 크게 상처가 났고 기원은 바둑계의 신망을 잃어 갈 곳 없이 표류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중심에 총재사인 중앙일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면서 홍석현 총재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글을 이어갔다.
51년생으로 67년 입단한 프로기사 노영하 9단은 76년 동양방송(TBC) 왕좌전 해설방송을 시작해 2013년까지 KBS바둑왕전 해설자로 활약했고, 최근 시니어 기사회장, 한국기원 이사, 운영위원 등 중책을 맡아왔다. 이 글을 올리기 직전 한국기원 이사 및 운영위원 등 임원직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노영하 9단은 “홍석현 총재님의 명성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는 자들이 바둑계에 횡행한다고 합니다. 대부분이 중앙일보 출신이거나 그 계열사에서 파견, 이직해온 자들이어서 총재님 명성에 큰 흠집이 날 지경입니다. 이들은 규정과 정관을 무시한 채 한국기원의 재산형성과 분배 등에 깊이 관여했고 바둑계 중심인 프로기사를 무시하는 행동과 발언으로 공분을 자아냈습니다. 근로기준법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는 행정으로 사무국을 초토화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이후 글 소제목에서 ‘송필호 씨는 부총재인가 총재인가?’, ‘얼빠진 바둑TV’, ‘절차를 무시한 사업추진, 배임과 횡령의 우려?’, ‘시대를 거꾸로 가는 사무국 운영’이라고 쓰며 세세하게 예를 들어 한국기원 운영 실태를 폭로했다. 주로 최근 추진하는 각종 사업에서 정관을 위배하고, 특히 이사회 승인을 거치지 않은 독단적인 운영 부분을 많이 지적했다.
홍석현 한국기원 총재
김성룡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프로기사 223명이 서명한 ‘윤리위보고서 폐기와 재작성 요청’건에 대해서는 “디아나 초단의 용기 있는 결단에서 시작된 바둑계 미투 운동에 대한 한국기원 집행부의 미온한 대처에 비난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법률적 판단에 앞서 상처받은 자를 위로하고 가지고 있는 권력을 누구에게 베풀어야 하는지를 잘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호소했다(이 건은 홍석현 총재가 주재한 10월 2일 임시이사회에 안건으로 올랐지만, 1표 차이로 재작성 요구가 부결되었다).
기사게시판에 올린 공개서한은 프로기사들에 의해 페이스북 등 각종 SNS를 통해 인터넷에 급속도로 퍼졌다. 이 글을 읽은 프로기사들은 댓글로 “내용이 어마어마하다.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렸다. 우려에 깊이 공감한다”, “진심으로 존경한다. 널리 알리겠다”, “처음 알게 된 사실도 정말 많다”, “바둑사를 새로 써야 할 것 같다” 등 다양한 지지의견을 남겼다.
일요신문과 전화인터뷰에서 노영하 9단은 “내가 가장 원하는 건 기사들의 단결이다. 예전과 달리 프로기사가 350명이나 되니 단합이 어렵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바둑계가 신뢰를 회복하는 방안을 찾길 바란다”라고 글 쓴 이유를 밝혔다.
더해서 “내가 쓴 내용이 100% 맞는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확인한 사실도 있고, 들은 이야기도 있다. 무엇보다 이 어려운 시기에 부총재와 사무총장 등이 기사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늙은 바둑인이 직접 펜을 들었다”라며 원활한 소통이 없는 집행부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2018년 현재 한국기원 총재는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며 부총재는 중앙일보 출신 송필호 씨, 사무총장은 프로기사 유창혁 9단이다.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