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프고 등 AI 바둑프로그램 통합팩 다운받으면 원클릭 설치…누구나 프로기사 수준 수순 분석 가능
2016년 3월, 알파고에 직격탄을 맞은 바둑계는 그 후 2년 동안 2차, 3차로 등장한 강력한 인공지능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 중국 텐센트사가 개발한 ‘줴이(絶藝·절예)’, 후발주자 페이스북이 내놓은 ‘엘프오픈고(Elf OpenGo)’ 등은 대기업이 제작 지원한 대표적인 바둑 프로그램이다. 한때 세계최강이라 불렸던 중국기사 커제 9단이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에 두 점 깔고 패해도 이제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국가대표 연구실에서 나현 9단이 리지를 실행해 엘프고로 복기 중이다.
현재 인공지능 중 가장 강한 프로그램은 줴이와 엘프오픈고(이하 엘프고)다. 알파고가 2017년 5월 은퇴를 선언하고 바둑계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알파고에게 최고수 자리를 이어받은 줴이는 중국인터넷 바둑사이트에서 대국 위주로 사용하고 있어 일반인이 이용하긴 어렵다.
그런데 올해 6월, 페이스북이 엘프고 네트워크 파일(변환 가중치)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엘프고는 줴이와 엇비슷한 실력이다. 이어 중국 피닉스고, 대만 CGI, 일본 AQ도 가중치 소스를 오픈했다. 누구나 원하는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프로기사 수준으로 수순을 분석할 수 있는 인공지능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 GPU(그래픽카드)가 중요하다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연산에는 중앙처리장치(CPU)보다 그래픽카드(GPU) 성능이 더 중요하다. 물론 일반적인 컴퓨터 CPU에도 내장 그래픽카드는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 수읽기의 진수를 맛보려면 외장 그래픽카드 장착을 적극 추천한다. 수읽기 속도, 깊이, 정확도가 확연히 달라진다.
어떤 그래픽카드를 달아야 하나? 엔비디아사에서 만든 지포스 시리즈를 기준으로 하면 일반인들에겐 GTX 1060이 가성비가 가장 좋다. 가격은 20만~30만 원 사이다. 한 단계 위인 GTX 1070은 50만~70만 원, 현재 프로기사들이 애용하는 1080Ti급 한 장에 120만 원이 넘는다. 그 위로 전문가용도 많이 있지만,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리지 프로그램을 실행해 엘프고로 초반 착점 승률을 분석하는 장면.
그래픽카드 종류에 따라 수읽기 수준은 얼마나 달라질까? 왕십리에서 바둑도장을 운영하는 한종진 9단은 “연구생이나 아마추어 정상급 수준에선 GTX 1060 정도라도 공부하기에 충분하다. 더 좋은 그래픽카드를 쓰면 수순이나 착점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주변 배석에 따라 같은 수순을 진행해도 승률이 달라지는 부분인데 프로기사가 수준이 아니면 그 차이를 이해하긴 어렵다”라고 설명한다.
현재 국내 최상위급 프로기사들은 개인 컴퓨터에는 GTX 1080Ti 두 개는 기본으로 꽂혀 있다. 한국기원 국가대표팀은 1080Ti 4개를 붙여 쓴다. 이영구 9단은 “사실 1080급이면 한 개만 돌려도 프로기사가 공부하는 데 충분하다. 1080Ti만 달아도 내가 정말 열심히 뒀을 때 두 점으로 간신히 이기는 수준이다”라고 말한다.
#어떻게 설치하나? 사용법은?
그래픽카드를 확인했다면 프로그램 설치는 어떻게 할까? 몇 달 전까지도 일일이 관련 사이트를 찾아가 다운받고, 네트워크 파일을 업데이트해 연결하는 등 복잡다단한 과정이 필요했다. 지금은 네이버 블로그에서 통합팩을 다운받아 설치하면 원클릭으로 인공지능을 체험할 수 있다. 한국기원 프로기사들도 대부분 이 블로그를 통해서 통합팩을 다운받아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설치한다. 주소는 https://blog.naver.com/wonsiksnz다.
일요신문과 인터뷰에서 블로거 세븐틴은 “현재 나온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대부분 도스 환경에서 설정해야 하는데 윈도우에 익숙한 사용자들에겐 설치에 어려움이 있었다. 한때 IT회사에도 근무했지만, 통합팩을 만들 때는 대학 시절 컴퓨터 동아리에서 익힌 지식이 가장 도움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인공지능 작동 구조. 인공지능 프로그램도 하드웨어-구동프로그램-소프트웨어(변환가중치)가 있어야 작동한다. 출처=세븐틴 블로그 인공지능으로 바둑공부
통합팩을 설치하면 사바키(Savaki), 리지(Lizzie), 고리뷰파트너(GoReviewPartner) 같은 프로그램이 깔린다. 인공지능과 직접 대국하고 싶으면 ‘사바키’, 기보를 놓아보며 바로 승률과 최적 착점을 알고 싶다면 ‘리지’, 기보파일로 수순별 승률그래프를 보고 싶다면 고리뷰파트너를 쓴다.
프로기사들은 주로 복기하는 용도로 ‘리지’에 엘프고를 돌린다. 박정환 9단과 같은 연구실에 나가는 조인선 4단은 “우리 연구실도 1080Ti가 달린 컴퓨터를 쓴다. 인공지능은 포석 연구에 아주 유용하다. 엘프고가 제시하는 초반진행은 대부분 외울 정도로 익혀 사용한다”라고 말했다.
한국기원 4층 국가대표실에 들르면 “돌려봤어?”란 말이 자주 들린다. ‘이 수를 엘프고로 분석해봤냐’는 뜻이다. 가까운 미래, 세계최강 바둑기사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었던 까닭은 ‘인공지능’의 어깨에 앉았기 때문이다.”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