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키가 작았으나 흰 수염이 탐스러운 선풍도골이었고 뒤의 사내는 청수한 젊은 문사였다. 수염이 탐스러운 노인은 고려의 문하시중 정몽주(鄭夢周), 젊은 사내는 그의 녹사(錄事:수행원)였다. 정몽주는 날이 더워 개울가에 있는 벗의 집을 찾아갔다. 대문도 없는 그 집은 대나무들이 울타리를 둘러싸 울창했고 안에는 소박한 초가 한 채가 한 여름의 더위를 견디고 있었다. 정사 앞에는 함박꽃이며 목단, 작약과 같은 여름 꽃들이 만개하여 잎잎이 진한 꽃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대감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정몽주가 초가 앞에 이르자 마루에 앉아서 천을 짜던 백의소부가 다소곳이 인사를 했다. 미색이 많기로 유명한 개경이었다. 허름한 백의를 입은 젊은 부인도 당세에 짝을 찾기 어려운 미인이었다.
“지나는 길에 날이 더워 곡주가 있으면 얻어 마시려고 들렀소.”
정몽주가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백의소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백의소부는 총총걸음으로 부엌으로 들어가 작은 술동이를 가지고 나왔다. 정몽주가 쿵쿵거리고 술향기를 맡더니 표주박으로 몇 잔을 거푸 마셨다.
“오늘은 풍색(風色)이 매우 사납구나. 매우 사나워.”
정몽주는 탄식을 하면서 술을 마신 뒤에 꽃 사이에서 한바탕 춤을 추었다.
초가의 여주인은 정몽주의 기이한 행동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보다가 옆구리에 꽂혀 있던 퉁소를 꺼내 불기 시작했다. 젊은 여인은 퉁소로 유명한 여인이었다. 그녀가 퉁소를 연주할 때면 봉황새가 날아와 앉고 산속의 뭇짐승들이 내려와 앉아서 귀를 기울인다고 했다. 녹사는 그녀가 퉁소를 불자 청솔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아름다운 채운(彩雲)이 하늘에 가득한 기분이었다. 백의소부가 부르는 퉁소 소리는 천상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아름다웠다. 중국 서한시대 사마상여가 탁문군에게 사랑을 호소하면서 불렀다는 봉황곡이었다.
녹사는 황홀하여 꿈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이내 여인의 연주가 끝이 났다. 만개한 꽃 사이를 누비며 너울너울 춤사위를 펼치던 정몽주는 말없이 초가를 나와 말을 타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젊은 녹사가 황급히 뒤를 따랐다.
“너는 뒤에 멀찍이 떨어져 오거라.”
정몽주가 뒤를 따라오는 녹사에게 말했다.
“소인의 임무는 대감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어찌 멀리 뒤떨어져 오라고 하십니까?”
정몽주의 기이한 행동을 본 녹사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면서 그렇게 말했다.
“나를 바짝 따라오면 반드시 해를 입을 것이다.”
“소인이 죽는다고 해도 대감을 따르겠습니다.”
녹사는 정몽주가 몇 차례나 만류하는데도 듣지 않았다. 정몽주는 이날 선죽교를 건너 집으로 돌아오다가 이방원이 보낸 장사들의 쇠몽둥이에 맞아 죽었다. 정몽주와 녹사는 서로 껴안고 죽은 채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후세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정몽주는 경상도 영천 출생으로 학문이 뛰어나 과거에 급제한 뒤에 여러 벼슬을 역임하면서 무너져가는 고려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이성계 일파는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정몽주를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정몽주는 당대의 대학자인 대사성 이색(李穡)이 ‘동방 이학(理學)의 시조’라고 부를 정도로 학문이 뛰어나고 강직했다. 그는 이성계 일파의 부당한 유혹을 거부하여 선죽교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정몽주는 우리 집안을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몽주가 격살당하기 전, 하루는 이방원이 이성계에게 말했다. 이성계는 동북면 출신의 무장으로 막하에 많은 인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의 세력은 더욱 막강해져 정도전, 조준, 남은 등 고려의 쟁쟁한 가문이 그에게 가담해 있었다. 정몽주는 이성계 세력을 제거하지 않으면 역성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판단하여 그의 일파를 탄핵했고, 이성계 쪽에서는 정몽주가 목을 조여오자 그를 암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너는 정몽주를 모른다. 우리가 근거 없는 모함을 당하면 정몽주는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그러나 역성혁명을 일으키려고 한다면 알 수 없다.”
이성계가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1392년은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이 개국하는 해였다. 이방원은 역성혁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정몽주의 진심을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느 날 정몽주를 집으로 초대하여 연회를 베푼 뒤에 시 한 수를 읊었다.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 산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와 같이 하여 아니 죽으면 어떠하리
이방원이 지었다는 하여가(何如歌)다. 심광세(沈光世)의 해동악부(海東樂府)에는 두 번째 연이 ‘성황당 뒷담이 다 무너진들 어떠하리’로 되어 있다. 이는 이방원이 정몽주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지은 시라고 하여 조선시대 내내 인구에 회자되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는 이방원의 하여가에 단심가(丹心歌)로 대답했다. 단심은 임금에 대한 충성을 하는 붉은 마음이다.
정몽주의 죽음에 대한 실록의 기록은 약간 다르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이자고 하였으나 이성계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방원이 숭교리의 옛집에 이르러 근심을 하고 있는데 광흥창사(廣興倉使) 정탁(鄭擢)이 찾아왔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습니까?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정탁이 이방원에게 군사를 일으킬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방원이 즉시 이성계의 집으로 돌아와 바로 위의 형인 이방과(李芳果)와 이화(李和), 이제(李濟)와 의논하고 이두란(李豆蘭)에게 정몽주를 죽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우리 대장군께서 모르는 일을 어찌 감히 할 수 있겠습니까?”
이두란은 이성계가 모르게 정몽주를 죽일 수 없다고 반대했다. 다른 장수들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아버님께서 내 말을 듣지 않지만 내가 책임을 질 것이다.”
이방원의 단호한 선언에 휘하 장수들의 눈이 살기를 뿜었다.
“이씨가 고려왕실에 공로가 있는 것은 나라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으나 지금 소인의 모함을 받고 있다. 만약 스스로 변명하지 못하고 손을 묶인 채 살육을 당한다면 저 소인들은 반드시 이씨에게 더러운 죄를 뒤집어씌울 것이다. 뒷세상에서 누가 능히 이 사실을 알겠는가? 내 휘하에 장수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한 사람도 이씨를 위하여 힘을 쓸 사람이 없는가?”
이방원이 언성을 높여 소리 질렀다.
“어찌 사람이 없다고 하십니까? 명령만 내리시면 당장에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이방원의 맹장 조영규(趙英珪)가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다른 장수들도 다투어 정몽주를 격살하겠다고 소리쳤다. 이방원의 집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방원은 자신의 심복인 조영규, 조영무(趙英茂), 고여(高呂), 이부(李敷) 등에게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에 들어가 정몽주를 살해하라는 영을 내렸다. 변중량(卞仲良)이 그 계획을 정몽주에게 은밀히 누설했다. 정몽주는 이성계가 자신을 죽일 리 없다고 생각하여 병문안을 한다는 핑계로 이성계의 집을 찾아가 동정을 살폈다.
“정몽주를 죽이려면 지금이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이화가 이방원에게 말했다.
“그렇다. 지금이야말로 정몽주를 해치울 때다.”
“대장군이 노하시면 큰일인데 어찌하겠습니까?”
이화가 장수들과 계책을 세운 뒤에 이방원에게 물었다.
“하늘이 준 기회를 버리면 오히려 재앙이 되어 돌아온다.”
이방원은 장사들에게 정몽주가 돌아가는 노상에서 죽이라는 영을 내렸다. 장사들은 이방과의 집에서 칼을 가지고 와서 정몽주의 집 동리 입구에 있는 선죽교 주위에 잠복했다. 이내 정몽주가 말을 타고 선죽교에 이르렀다. 조영규가 숨어 있다가 재빨리 달려가서 쇠몽둥이로 후려쳤으나 맞지 않았다.
“웬놈들이냐? 썩 물러가지 못하겠느냐?”
정몽주가 조영규를 꾸짖고 말을 채찍질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저 놈을 죽여라!”
조영규가 재빨리 쫓아가 말머리를 쳐서 말이 넘어졌다. 고여와 이부도 빠르게 달려가 정몽주를 에워쌌다. 정몽주가 땅에 떨어졌다가 일어나서 급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고여 등이 정몽주의 머리를 쇠몽둥이로 후려쳤다. 정몽주는 비명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선죽교 위에 쓰러졌다.
다른 장수들도 다투어 정몽주에게 쇠몽둥이를 휘둘렀다. 정몽주는 고려를 위해 절개를 지키다가 조영규 등에게 격살을 당해 죽었다. 그가 죽은 뒤에 고려는 속절없이 무너졌고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석해 했다. 그의 피가 흥건하게 스며든 선죽교에는 아직도 선혈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다음호에 계속>